지난 토요일 탐라YLA 학생들과 위르겐 하버마스(Jurgen Habermas)의 <사실성과 타당성>,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감시와 처벌>,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의 <자유론>을 읽었습니다. 아래에 <사실성과 타당성>에서 발견한 재미있는 구절 몇 개를 옮겨 둡니다.
앞 부분을 읽을 때는 인터넷에서 전개되는 다양한 토론이 생각나고, 맨 마지막 문단을 읽을 때는 '어버이 연합'이 떠올랐습니다. 소위 '고전'을 읽는 이유는 그 책들이 지금 여기의 삶에 여전히 유효한 진실을 얘기하기 때문이겠지요. 참, 하버마스의 이름 Jurgen의 u자 위에 움라우트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가 아닌 '위'로 발음되는 것이겠지요. 제가 움라우트 찍는 방법을 몰라 그냥 u로 써두었습니다.
"민주주의는 활기찬 시민사회와 역동적인 정치적 공론장을 먹고 산다. 주변화된 층을 정치적 공동체 속으로 포용하여, 목소리를 잃은 사람들에게 정치적 목소리를 되돌려주기 위해선 시민사회와 정치적 공론장르로부터 끊임없이 자극이 나와야만 한다."
"이러한 공론장은 여전히 공중이 물리적으로 모여 있는 구체적 장소에 묶여 있다. 그것이 이러한 물리적 현존과 분리되어, 흩어져 있는 독자, 청중, 구경꾼들이 매체를 통해 가상적으로 현존하는 것으로 확장될수록, 단순상호작용의 공간 구조가 공론장으로 일반화되면서 나타나는 추상성은 더 분명해진다.
이런 식으로 일반화된 의사소통 구조는 단순상호작용의 조밀한 맥락이나 특정한 인물 또는 결정과 관련된 의무 등으로부터 분리된 내용과 태도 표명으로 좁혀진다. 다른 한편, 맥락의 일반화, 융합, 늘어나는 익명성은 높은 정도의 해명을 필요로 하며 동시에 이 해명은 전문언어와 특수한 코드 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일반인을 지향한다는 것은 일정 정도의 탈분화를 의미하는 데 반해, 소통된 의견이 구체적인 행동의무와 분리되는 현상은 지성화의 효과를 가져온다.
확실히 의견형성 과정은, 거기서 다루어지는 것이 실천적 질문인 한, 참여자들의 선호변화 및 태도변화와 분리될 수 없다. 그러나 성향을 행동으로 전환시키는 과정으로부터 그것이 분리될 수는 있다. 그러한 한, 공론장의 의사소통 구조는 공중에게 결정의 부담을 면제시켜준다. 그 결정은 의결을 담당하는 제도에 일임된다."
"공적 의사소통의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척도는 '일반성의 설립' 자체에 있는 게아니라, 질적 조건을 갖춘 공적 의견이 등장하기 위해 충족해야 할 형식적 기준에 있다. 권력에 의해 통제된 공론장의 구조는 결실 있는 명료한 토론을 배제한다."
"활기찬 시민사회는 자유로운 정치문화와 그것에 상응하는 사회화 유형이라는 맥락 속에서만, 그리고 침해되지 않은 사적 영역이라는 기초 위에서만 형성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것은 이미 합리화된 생활세계 속에서만 발전될 수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자본주의적 현대화에 의해 위협받은 생활세계의 경직되고 완고한 전통을 맹목적으로 수호하려는 민주주의 운동이 등장하게 된다. 이 운동은 그 동원 형식은 현대적이지만 그 목료는 반민주주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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