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시사자키 "송곳"

2009년 10월 29일

divicom 2010. 1. 11. 18:31

Q: 오늘은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A: 오늘은 ‘말’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마침 지난 월요일은 안중근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지 100년이 되는 날이니, 안중근의사의 말씀으로 시작한다. “인무원려난성대업 (人無遠慮難成大業),” 즉 “멀리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은 큰일을 이루기 어렵다”는 뜻이다.

 

Q: 안중근 의사가 하신 말씀이 많은데 특히 이 구절에 주목한 이유는?

 

A: 최근 방송인 김구라 씨의 퇴출을 주장한 한나라당 진성호 의원 때문이다. 진 의원은 “슈퍼MB맨"을 자처하는 분인데, (홈페이지에 그렇게 쓰여 있다) 지난 주 국정감사에서 작년에 방영된 KBS 2TV <스타골든벨>을 틀어 보였다. 바로 김구라 씨가 비속어를 사용하는 장면이었는데, 그러면서 그 자리에 있던 KBS 사장에게 “저런 분은 좀 빼십시오”라고 했다. 이 소식이 보도되자 수많은 네티즌들이 진 의원을 비난했다. 마침 <스타골든벨>의 사회를 보던 김제동 씨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퇴출되어 많은 분들이 분개하고 있던 참이었다. 문화평론가 진중권씨는 진 의원을 겨냥, “한나라당, 저런 분 좀 빼라”라는 제목의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  

 

Q:그렇다. 진중권씨는 오락프로그램의 출연자조차 여당의원이 좌지우지하는 세상이 되었냐고 비난했다.

 

A: 진성호 의원의 홈페이지에 “지상파 방송사 주요진행자별 막말방송 중점 위반 내역”이라는 게 있다. 거기 보면 프로그램 1회당 평균 위반건수가 김구라씨 42.3회, 윤종신씨 32.8, 최양락씨 21.6회로 되어 있다. 방통심의위원회에 따르면 방송언어 관련 위반 건수는 해마다 늘어 2006년엔 8건이던 게 작년엔 17건, 올해는 9월까지 17건이라고 한다.

 

Q: 진 의원이 중요한 문제를 지적했는데 왜 칭찬하지 않나?

 

A: 처음에 ‘멀리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은 큰일을 이루기 어렵다’는 안중근 의사의 말씀을 인용한 이유가 있다. 진 의원은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이다. 이 위원회는 이름이 긴 만큼 다루어야 할 일도 많다. 국정감사는 국회의원이 국민을 대신해서 정부에 묻고 따지는 기회다. 유명한 연예인을 공격하면 당장 매스컴의 시선은 끈다. 진 의원도 모 신문이 선정한 “국감에서 주목받은 초선의원” 명단에 들었다. 그러나 특정 연예인을 공격하는 건 근본적 문제 해결과는 상관이 없다. 게다가 진 의원은 김구라씨를 비난하면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막장 드라마와 반대의 이미지를 가진 <전원일기>에 오래 출연했다”고 치켜세웠는데, 유 장관하고 막역한 사이라 그랬는지 몰라도, 거친 말을 문제 삼으면서 거친 말 때문에 비난 받아온 유 장관을 치켜세우니 우습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Q: 그럼 어떻게 해야 방송언어의 비속화를 막을 수 있나?

 

A: 방송 언어가 천박해진 건 연예인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프로그램의 문제이다. 지금 퇴출시켜야 하는 건 김구라씨가 아니라, 다수의 연예인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품위 없는 말과 몸짓으로 웃음을 만들어 내게 하는 프로그램들이다. 가수는 노래를 잘하면 되고, 배우는 연기를 잘하면 되고, 아나운서는 우리말을 정확하게 구사하면 되는데, 소위 “예능”이라는 건 이 모든 사람들을 한곳에 모아 천박하게 평준화시킨다. 이런 프로그램들이 퇴출되지 않는 한 방송 언어의 비속화를 막을 수 없다. 앞에 인용한 안중근 의사의 말씀은 연예인들에게도 해당된다. 멀리 보는 사람이라야 큰일을 할 수 있다. 연예인에게 TV출연 욕심은 자연스러운 거지만, 자존심과 용기를 갖고 말장난 하는 자리에는 가지 않는 연예인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런 연예인이 오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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