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박인숙 승천 (2013년 8월 23일)

divicom 2013. 8. 23. 10:43

오늘 새벽 박인숙 씨가 세상을 떠났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장 유착과 복막염으로 인한 패혈증... 둔기로 머리를 아주 세게 맞은 듯 전신이 설명할 수 없는 멍한 상태로 빠져들었습니다. 언제부턴가 모든 것을 놓아 버리고 자꾸 사랑만 키우기에, 이 세상은 그런 사람을 붙들어 둘 자격이 없기에... 마음이 불안했는데...


박인숙과 저는 한국일보사 기자로 만났습니다. 33기 견습기자 출신인 저는 코리아타임스에 있고 36기인 그는 일간스포츠에 있어 함께 일한 적은 없지만 나이 비슷한 선후배로 가끔 어울렸습니다. 자주 만나지 않아 함께 보낸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그는 제게 '스승 같은 친구'였습니다. 그는 외모도 내면도 장식이라고는 없는, 나무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서울대학교를 다닌 머리 좋은 사람이었으니 야심과 냉소의 길로 빠질 수도 있었지만 그는 뼈 속까지 사랑을 채웠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담배라도 마음껏 피우게 할 걸... 그를 위한다고 은근히 금연 압력을 넣었던 게 후회됩니다. 지난 달인가... 한국일보사 전,현직 여기자 모임에서 보았을 때 환히 웃던 얼굴이 떠오릅니다. 죽음은 저만치 남의 일인 줄 알았는데... 


어차피 자주 만나던 사이도 아니니 인숙씨가 예전처럼 저기 일원동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되겠지만, 

가끔 진짜로 보고 싶을 땐, 그가 그리도 잘하던 '사랑과 용서'를 직접 만나 배우고 싶을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인숙씨, 사랑하고 존경하는 인숙씨, 벌써 그리운 인숙씨, 당신의 사랑 박상천 시인과 당신들의 '열매'를 

위로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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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말은 망설일 필요가 없네 

(박상천 시 -- 시집 <5679는 나를 불안케 한다>에서 인용.)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어느 날 문득

사랑한다는 말도 하기 전에

이 지상을 떠나가 버리네.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해

망설이고 있을 때 

내 사랑하는 사람들

문득, 세상을 떠나가 버리고 마네.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 위해

숨차게 계단을 뛰어내려 가면,

갑자기 지하철 열차가 문을 닫고

떠나가버리듯

나 혼자 이곳에 남겨 두고

저 멀리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리네.

내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해 머뭇거리고 있을 때

사랑한다는 말은 망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떠나가 버리네.

내 사랑하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