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헬렌 토머스 (2013년 7월 25일)

divicom 2013. 7. 25. 08:05

미국 백악관 출입 여기자로 이름 높았던 헬렌 토머스(Helen Thomas)가 지난 20일 별세했습니다.

1920년 8월에 태어나 2013년 7월에 타계했으니 짧지 않은 생애(生涯)를 살았지만 참 애석합니다.


'기자는 시민을 대신해 질문하는 사람'이라고 할 때, 그이만큼 필요한 때에 필요한 질문을 하는 기자는 

드물었습니다. 상대가 누구든, 어떤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이든 질문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습니다. 


존경할 만한 '동행'이 또 한 사람 사라진 지구, 그만큼 낯설게 느껴집니다. 마침 김수종 선배님이 자유칼럼(www.freecolumn.co.kr)에 그를 애도하는 글을 쓰셨기에 옮겨둡니다.


*참, '생애(生涯)'의 '애(涯)'는 '물가 애'라고 합니다. 그럼 우린 평생 '생의 물가'를 서성이다 가는 걸까요?



www.freecolumn.co.kr

대통령을 긴장시켰던 기자

2013.07.25


의사는 환자에게 질문함으로써 그의 직업적 업무를 시작합니다. 검사나 형사는 피의자와 참고인에게 질문을 던짐으로써 범죄의 단서를 찾아갑니다. 선생님은 학생에게 질문하며 공부의 방법을 가르칩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어떤 방식이든 질문을 통해 상대방과 세상을 파악하며 살아갑니다.

기자는 질문하며 살아가는 직업인입니다. 기자처럼 광범위하게 질문의 대상을 가진 직업도 없습니다. 대통령과 재벌총수 같은 권력자, 연예인과 운동선수 같은 스타들은 물론, 때로는 테러리스트나 악질적 범죄자에게도 얼굴을 내밀고 질문을 던져야 하는 직업이 바로 기자입니다. 기자의 질문을 통해 이 세상의 하루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방대한 정보로 가득하게 됩니다. 

지난 주말 한 사람의 여기자가 타계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헬렌 토머스. 한국 사회에서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워싱턴 정가나 언론계에서는 전설적인 백악관 출입기자로 너무나 유명한 사람입니다. 1920년 생으로 만 93세까지 살았으니 장수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에게는 생물학적인 장수(長壽)보다 70년을 현직기자로, 그 가운데 거의 50년을 백악관 출입기자로 활약한 직업적 장수에 더 경외감을 느끼게 됩니다. 

헬렌 토머스가 UP통신(UPI통신의 전신) 기자로 백악관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던 때가 1961년으로 존 F.케네디 대통령의 임기 첫 해이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태어난 해이기도 합니다. 그녀가 백악관 브리핑룸을 지킨 반세기 동안 미국을 통치한 대통령이 무려 10명이나 됩니다. 케네디, 존슨, 닉슨, 포드, 카터, 레이건, 부시(아버지), 클린턴, 부시(아들), 오바마가 그녀의 질문을 받았던 대통령들입니다. 닉슨의 중국방문에 여기자 최초로 수행했고, 피격후의 레이건을 최초로 인터뷰하는 등 수많은 특종을 쏟아냈습니다. 따라서 백악관 출입기자로서 그녀가 매일 듣고 본 것은 그대로 백악관 반세기의 역사였을 뿐 아니라, 세계사의 단면들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런 취재경력을 토대로 미국 대통령에 관한 책을 무려 6권이나 저술했습니다. 

그녀가 백악관 출입 첫 여기자로 입성했을 때만 해도 성차별의 천정이 미국 언론계를 덮고 있었을 때입니다. 백악관에서는 해마다 백악관 출입기자와 사진기자들을 위한 디너파티가 열리는 관행이 있었는데, 여기자는 참석할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1962년 헬렌 토머스는 케네디 대통령에게 여기자 입장을 허용하지 않는 디너파티에는 대통령이 참석하면 안 된다고 으름장을 놓아 이를 관철시켰다고 합니다.

기자로서의 헬렌 토머스의 진면모는 역시 백악관 브리핑 룸을 차지했던 그녀의 카리스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브리핑 룸의 맨 앞줄에는 그녀의 지정석이 마련되었습니다. 역대 대통령들은 맨 앞자리에 앉아 손을 드는 그녀에게 첫 질문 기회를 주지 않을 수 없었고 기자회견이 끝날 즈음 그녀가 던지는 “대통령님, 감사합니다.”란 말이 바로 회견을 마무리하는 신호였다니 그 권위를 짐작할 만합니다. 이는 어떤 백악관 출입기자도 가져보지 못한 비공식 특권이었습니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그녀의 거침없는 질문에 당황하고 곤혹스러워하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특히 그녀의 성향이 진보적이었기 때문에 공화당 대통령들에 대한 질문이 더욱 거칠었던 모양입니다. 이라크 전쟁을 맹렬히 반대했던 그녀는 조지 W.부시 대통령에게 매섭게 질문공세를 폈고, 그녀의 질문을 받고 쩔쩔 매는 부시 대통령의 모습이 가끔 텔레비전 화면에 나올 정도였습니다. 때로는 백악관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도 그녀의 질문 태도가 무례한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몇 년 전 뉴욕타임스가 인터뷰를 하면서 “따지는 질문과 무례한 질문의 차이를 정의해 달라.”고 하자 그녀는 “무례한 질문은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질문하는 행위에서 만큼은 양보와 타협의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는 자세였습니다. 

글 한 줄 읽지 못하는 레바논 이민자의 딸로 태어난 헬렌 토머스, 그러나 아버지는 야채가게를 하면서 딸을 대학에 보내 교육시켰습니다. 그녀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워싱턴에서 일자리를 구했는데 처음엔 조그만 신문의 원고 나르는 사환으로 일하다가 1943년 UP통신에 주급 24달러짜리 기자가 되어 언론인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그녀는 아랍계로 그리스정교를 믿는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미국의 중동정책에 대해서는 대단히 비판적인 입장을 고수했고 이스라엘을 싫어했으니 역시 피는 속일 수 없는 아랍계 미국인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녀가 2010년 언론계를 은퇴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아랍계 단체 모임에서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유태인들을 비난하며 독일이나 폴란드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 것이 반발을 불렀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공식 사과하고 끝내 언론계를 떠났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헬렌 토머스를 애도하는 성명을 통해 “그녀는 나를 포함해서 대통령들로 하여금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오바마의 말에 진실성이 느껴집니다. 그녀가 질문 포문을 여는 백악관 브리핑룸에서는 대통령도 긴장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대통령제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을 긴장하게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대통령을 긴장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야당이 포진한 국회와 언론이 아닐까요. 그러나 야당은 당파성을 띠는 게 속성이기 때문에 언론이 던지는 긴장감이 대통령의 권력을 타락하지 않게 이성적으로 지탱시켜주는 데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을 긴장시키는 언론의 힘은 기자의 질문에서 나옵니다.  

필자소개

김수종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 생활. 환경과 지방 등에 대한 글을 즐겨 씀.
저서로 '0.6도'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등 3권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