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한국일보 기업 회생 신청(2013년 8월 2일)

divicom 2013. 8. 2. 08:15

한국일보의 전, 현직기자들과 논설위원들을 비롯한 사원 201명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한국일보 기업회생 절차 개시를 신청했다고 합니다. 편집국을 폐쇄하여 기자들의 신문 제작을 막았던 장재구 회장이 법원이 폐쇄를 금한 후에도 자신을 따르는 10여 명만 데리고 '짝퉁 한국일보'를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래는 한국일보바로세우기위원회에서 보내온 호소문입니다. 비양심적인 자본가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한국일보를 응원해 주십시오.



한국일보를 살릴 마지막 기회입니다

 

-뼈를 깎는 희생 각오하고 기업 회생을 신청했습니다-

 

한국일보를 사랑하는 독자, 국민 여러분.

 

한국일보 전현직기자들과 논설위원들, 그리고 경영지원 부문 사원 등 201명은 724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한국일보에 대한 기업회생(법정관리) 절차 개시를 신청했습니다.

 

저희는 누구보다 한국일보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언론계 종사자로서의 명예와 자부심,긍지는 한국일보가 아니었다면 성취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일보는 장재구회장의 부실비리 경영으로 부도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이미 경영에 빨간 불이 켜졌는데도 장 회장은 자신을 추종하는 10여명 남짓한 간부와 기자를 데리고 외부 통신사 기사를 베끼는 방법으로 짝퉁 한국일보를 만들어 한국일보를 끝모를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저희 전현직기자들과 논설위원들, 그리고 경영지원 부문 사원들은 장 회장이 망가뜨리고 있는 한국일보를 정상 발행하기 위해선 법원에 의한 기업회생 절차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은 재무상태입니다

 

한국일보의 경영파탄은 오래 된 일입니다. 20081월 워크아웃을 졸업할 당시 200억 원 대에 불과했던 부채는 5년만인 2012년 말 692억 원으로 불어났습니다. 한국일보사는 2009년 이후 줄곧 자본잠식 상태입니다. 최근 4,5년 간 일상화된 부도 위기를 회사는 임금 체불, 어음 지급기일 연장, 국세 체납으로 모면해왔습니다.

 

주요 거래처들은 기존 채권을 볼모로 잡힌 채 납품 거래를 사실상 강요당했습니다. 사원들은 회사가 납부해야 할 국민연금, 건강보험료 등이 장기 체납되는 바람에 해당 기관으로부터 연금이나 보험 혜택을 못 받을 수 있다는 통보 서신을 수없이 받았습니다. 기자들은 제 돈으로 출장을 가고 체재비용(특파원의 경우)을 쓴 뒤 6개월~1년이 지난 뒤에야 구걸하듯 지급받았고, 심지어 월 몇 만원의 출입처 기자실 운영비조차 장기 미납해 기자실출입이 막힐 위기에도 처했습니다. 퇴직금도 주지 않아 퇴직자들은 소송을 해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저희는 2011년부터 노사 협의를 통해 M&A를 추진하는 등 한국일보를 살리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지속해왔습니다. 그러나 장재구 회장의 거부로 M&A는 무산됐고 신규 투자를 통해 한국일보의 발전을 꾀하려던 기대는 무너졌습니다.

 

아슬아슬하던 한국일보 경영 상태는 장재구 회장이 615일 용역 인력을 동원해 편집국을 폐쇄하고 기자들의 신문 제작을 차단함으로써 부도 상황으로 치달았습니다. 장 회장이 180여 명에 이르는 기자들을 내쫓은 채, 10여명의 소수 간부와 기자들을 동원해 외부 통신사 기사를 베껴 만든 신문은 쓰레기 종이뭉치로 불리고 있습니다. 자연히 광고협찬 매출은 전년의 절반도 되지 않을 정도로 격감했습니다. 장 회장과 경영진에 대한 여론 악화로 구독 중단도 속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시민단체 등의 불매운동과 주요 광고주의 광고 기피 움직임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신문은 신문대로, 경영은 경영대로 최악의 상태로 망가지고 있습니다. 더 이상 두고보다 간 실낱같은 회생 가능성조차 사라질 수 있는 다급한 위기 상황입니다.

 

장재구 회장의 비리와 부실경영을 청산해야 합니다

 

한국일보사의 경영악화는 신문 산업 축소라는 외부 요인보다는 대주주인 장재구 회장의 비리와 부실 경영에 있습니다. 2012년 말 재무제표에 따르면 한국일보사는 주주에게 194억 원을 빌려주고(주주장단기 대여금) 그 전액을 대손충당금, 즉 못 받고 떼일 돈으로 상정했습니다. 장 회장이 대주주인 한국미디어그룹에도 58억원을 대여해 줬지만 역시 대손충당금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장 회장이 주주인 또 다른 관계회사인 코리아타임스, 서울경제, 스포츠한국 등에는 265억 원의 외상(매출채권)을 주었는데, 이는 한국일보 연 매출액(731억 원)36%나 되는 이례적인 금액입니다. 외부 필자에게 줄 원고료, 신문용지 값, 세금과 건강보험료, 기자에게 줄 취재비 등은 주지 않으면서, 장 회장은 회사 돈을 빌려가 갚지 않고 외상 장사만 한 것입니다.

 

한국일보 노조는 지난 429일 장재구 회장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했습니다. 200억 원의 가치가 있는 중학동 사옥 우선매수청구권을 자신의 개인 빚을 변제하기 위해 포기함으로써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는 것이 혐의의 골자입니다. 719일에는 장재구회장이 지분을 가진 유령 회사가 한국일보의 부동산 다수를 담보로 잡히고 그것도 모자라 한국일보의 지급보증까지 해주며 거액의 대출을 받도록 한데 대해 별도의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했습니다.

 

검찰이 엄정히 수사하고 법원이 판결을 내리면 문제가 해결될 텐데 왜 갑자기 기업회생을 신청했는지 의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저희는 검찰과 법원이 장재구 회장을 엄중하게 단죄할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나 장 회장은 사법부의 준엄한 판결마저 무시하고 있습니다. 79일 법원이 편집국 폐쇄를 불법 직장폐쇄로 규정하고 기자들이 낸 가처분신청을 인용하는 결정을 내렸지만 장 회장과 사측은 지금까지 기자들의 조판(신문편집)을 막고 간부 기자들에게 대기 발령을 내리면서 짝퉁 신문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한 경영 손실이 어마어마한데도 자신을 고발한 기자들이 괘씸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편집국 정상화를 외면하는 장 회장의 고집을 감안하면, 법의 판결이 내려지기 전에 한국일보는 흔적조차 없어져 버릴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 구성원들이 비리 사주의 전횡을 막고 한국일보를 회생시킬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법원에 회사를 맡기는 길 뿐입니다.

 

이미 법원은 724일 이후 1주일동안 신청인과 사측의 의견을 청취했고, 이를 바탕으로 81일 재산보전처분을 내렸습니다. 동시에 과거 한국일보의 워크아웃 당시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에서 파견돼 채권관리단장을 역임했던 고낙현 씨를 보전 관리인에 임명했습니다. 고 관리인은 앞으로 법원에서 기업회생 절차 개시를 선언할 때까지 재무인사 등 경영 사항을 법원과 협의하여 결정하게 됩니다. 기존 장재구박진열 대표이사의 권한은 이날로 정지됐습니다.

 

뼈를 깎는 희생, 기꺼이 감수하겠습니다

 

법원이 회생절차개시를 허가한다면 저희는 앞으로 인건비 절감을 포함한 뼈를 깎는 자구 노력과 만성 적자 사업 정리 등을 통한 비용 절감, 수익성 있는 사업의 적극 전개 등을 통해 한국일보 살리기에 나설 것입니다. 법원에서 능력 있고 공정한 법정관리인을 선임해준다면 관계사에 퍼주었던 외상 매출을 정리하고, 과거 채권은 적극회수하며, 투명한 회계를 통해 경영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용 절감을 통해 발생한 잉여의 일부는 중장기적인 매출구조 개선에 나서고 새로운 성장 동력도 확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장기간 짝퉁 신문이 발행됨으로써 땅에 떨어진 독자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하여, 전 기자들이 합심하여 진정한 정론지로서의 위상을 되찾을 수 있도록 좋은 기사, 훌륭한 신문을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사회의 정론지로 제 역할을 다 하겠습니다

 

최근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문제, 남북정상회담의 NLL 발언 해석 논란 등 국가적으로 중대한 이슈가 연일 보도되고 있는 가운데, 편향되지 않고 공정하게 시시비비를 가리는 한국일보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는 독자분들이 많았습니다. 많은 문화예술인, 정치인, 시민단체, 사회단체에서 한국일보 기자들을 지지해주셨고, 저희들이 하루 빨리 기사를 쓰고 신문을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해주셨습니다.

 

신문을 만들지 못하고 편집국에서 쫓겨나 있는 동안 기자들은 사회의 약자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했다고 반성했으며, 이념과 무관하게 진실을 보도하는 언론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고 절감했습니다. 다시 우리 손에 펜이 주어진다면 불편부당, 춘추필법, 정정당당이라는 창간 이념을 가슴에 새기고 제 역할을 다 할 것입니다.

 

한국 언론환경에서 꼭 필요한 존재인 한국일보가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저희의 결단을 지지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201381

 

한국일보 기업회생 신청인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