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수도 번화가 신주쿠(新宿)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인 신오쿠보(新大久保)에 있는 ‘코리아 타운’이 요즘 민감한 한일관계의 여파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곳에 주말이면 어김없이 소위 ‘겐칸(嫌韓)’ 데모가 일어나, ‘조선인 죽어라’ ‘바퀴벌레 조선인’ 등 험악한 구호를 외치며 소란을 피우기 때문입니다.
소규모이기는 하나 점점 과열되는 이 극우 과격분자의 소행에 분개한 일부 양식 있는 일본인들과의 말싸움과 충돌 직전의 아슬아슬한 사태까지 벌어져, 이 문제는 오히려 일본 측 인사들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근년의 ‘한류 붐’의 열기로 한국 음식점, 슈퍼 마킷, 잡화상, 공연장 등이 운집하여 형성된 이 거리는, 2001년에 술에 취해 전차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던 한국인 학생 이수현 의인(義人)이 목숨을 잃은 역이 있는 곳이기도 하여, 뜻있는 일본인들을 슬프게 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동경은 2020년도 올림픽 개최를 신청한 도시여서, 만일 현재의 반한 시위가 레이시즘(인종차별주의)으로 오해되면 올림픽 유치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악명 높은 인종차별주의자 이시하라 신타로(石原太) 뒤를 이어 도쿄도지사로 당선된 이노세 나오키(猪直樹) 씨는 “1,300만 인구 중 겨우 200 명밖에 안 되는 수이지만 주시는 하겠다"는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와는 달리, 일본 최대 종합 월간지 ‘분게이슌주(文藝春秋)’ 4월호는 ‘현대 일본을 이해하기 위해 절대 알아야 할 최신 상식 62’라는 55쪽에 달하는 특집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저널리스트 야스다 코이치(安田浩一) 씨의 다음과 같은 글을 소개했습니다.
<쫑코 쫑코 등 독특한 가락으로 연도(沿道) 한국인을 조롱하는 그들 모습에서는 우익이나 보수라는 문맥은 떠오르지 않는다. 아무리 봐도 단순한 분풀이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거기에는 다케시마[獨島]나 일본 국내의 빈곤문제 등으로 자극된 ‘뭔가를 잃었다’는 피해자 감정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의 ‘일반 일본인’의 의식의 밑바닥에 있는 뭔가와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이 글의 마지막 부분이 특히 필자의 눈을 끌었습니다.
광복 전, 일제의 간악한 민족차별을 직접 경험한 뒤 1950년대 초기의 미국 흑백 인종문제의 비참한 상황도 본 필자는, 작년 말 재집권에 성공한 아베 신조(安倍晉三) 자민당 정부의 우경화에 많은 우려를 가지고 있습니다.
4월에 시작되는 신학년도 고등학교 교과서를 검정할 때, 도쿄도 교육위원회는 10만여 명의 희생자를 낸 1923년 도쿄 대지진 때 7,000명에 가까운 조선인이 학살당한 사실을 삭제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이 조선인들은 지진으로 사망한 것이 아니고, 폭동을 일으킨다는 유언비어에 선동된 일본인에 의해 무참하게 죽음을 당한, 말하자면 인종차별의 희생자였습니다.
일제강압 시 ‘일시동인(一視同仁)’이란 허울 좋은 구호 아래 우리 민족을 차별한 일본 군부는 1932년 ‘오족협화(五族協和)’란 미명 아래 일본인, 조선인, 한인(漢人), 만주인 및 몽고인의 다섯 민족을 위한 나라라고 만주국(滿洲國)이라는 괴뢰국가를 중국 동북부에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신주불멸(神州不滅)’의 단일민족을 맹신하는 일본 극우 지도자들의 눈에 조선인이나 중국인은 언제나 2등 국민이었습니다. 1930년대 중국 상하이의 외국 조계지(租界地) 공원에 ‘개와 시나징(支那人)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서 있었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러한 인종차별주의자 피가 조금이라도 지금의 일부 극우 보수주의 지도자 핏속에 섞여있지 않은가 하고 걱정하는 것은 말 그대로 의심암귀(疑心暗鬼)일 것을 바랄 뿐입니다. 그러나 일본의 조선 통치 35년이 선정(善政)이었다고 우기는 우익 운동가가 일본에 아직도 많습니다. 심지어, 일본 철수 후, 한국은 1km의 철도도 부설하지 못했다고 공개석상에서 수년 전 말한 우익 지도자도 있습니다.
일본에서 유별나게 민족차별 감정을 드러내는 대표적 정치가가 이시하라입니다. 도쿄도지사 네 번째 임기 도중 돌연 80세 고령으로 중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국회로 되돌아간 그는 재일동포나 중국인을 언제나 ‘제3국인’이라 부르고, 특히 중국인은 반드시 ‘시나징’이라는 비속어로 부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재일교포 중에서도 한국 국적을 가진 채 최근까지 동경대학 교수로 재임한 강상중(姜尙中) 씨는 일본사회에서 이시하라에 못지않은 저명인사입니다. 그런 강 교수를 이시하라는 2006년에 ‘수상쩍은 외국인’이라 비하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비록 일본인으로 귀화는 했지만, 손정의(孫正義) 씨는 일본 최고 갑부의 한 사람으로 정보산업으로 대성공한 사업가입니다. 2011년 3월 일본 동북대지진이 일어나자, 손 사장은 바로 다음 달 지진 피해복구를 위해 100억엔(당시 환율로 약 1400억원)의 기부를 발표하고, 5월에 그 기부금의 기탁 배분까지 공표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시하라는 그 해 여름 어느 방송 인터뷰에서, ‘손 아무개’가 100억엔을 기부한다고 발표했었는데, 실제로 가탁까지 했는지 확인해 보았는가라는 손 사장을 의심하는 비하 발언을 했습니다.
이런 무책임한 발언을 서슴없이 하는 정치가가 수도 도쿄에서 수백 만 유권자 지지를 얻어 네 번이나 당선하고, 지난해 중의원 선거에서도 극우 ‘일본 유신의 회’ 공동대표로 당선, 국정에 참가하였습니다. 이것이 일본의 현 실정입니다. 신오쿠보 ‘코리아 타운’의 겐칸(嫌韓)데모를 다룬 월간지 글 마지막 부분에서 의미심장하게 언급한 ‘일반 일본인 밑바닥 감정’의 뜻을 알 만한 대목입니다.
최근 들어 북한 김정은 통치자의 계속되는 전쟁 공갈 발언으로 약간 뉴스 뒷면으로 밀려났지만, 일본의 한국인에 대한 의식은 작년 하반기 이래 급변하였습니다. 한때 국민의 3분의 2 가까이가 한국을 우호적 국가로 들었으나, 지금은 그 비율이 거의 거꾸로 되었습니다. 싸이를 비롯한 한류 스타들 기사 보기가 힘들고, 해마다 우리 가수 한두 명이 출연하던 NHK 연말 가수 대항전에 작년에는 한 명도 뽑히지 않았습니다. 한국에 오는 관광객도 거의 반 가까이 줄었습니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 위안부나 독도 문제 이전에, 이런 미묘한 문제가 밑바닥에 잠재한다는 것을 인식하며 양국 간 문제 해결에 접근했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