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좋아하는 음악은 싸이가 만들어내는 음악과 많이 다르지만, 저는 이 가수를 싫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의 솔직함, 대중의 마음을 읽는 능력, 그가 '강남스타일'로 이룬 세계적 성공 등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러나 그가 '강남스타일' 후속으로 내놓은'젠틀맨'은 피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그것이 심하게 여성 비하적이기 때문입니다. 여성가족부와 여성단체들의 침묵이 의아합니다. '한류' 때문일까요? 마침 어제 자유칼럼(www.freecolumn.co.kr)에서 보내준 한국일보 임철순 논설고문의 글이 공감을 자아내기에 여기 옮겨둡니다.
싸이의 신곡 ‘젠틀맨’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뮤직 비디오가 공개된 지 9일 만인 4월 22일, 동영상 재생사이트 유튜브 공식 채널에서 조회수 2억뷰를 최단시간에 돌파했습니다. 종전 2억뷰 돌파기록은 지난해 9월 18일 그의 ‘강남 스타일’이 66일 만에 수립한 것입니다. ‘젠틀맨’의 시간당 평균 조회수가 100만 건 이상이라니 신기록이 얼마나 이어질지 모를 만큼 파장이 대단합니다.
그러나 호평과 열광, 찬탄 일색인 것은 아닙니다. 아래에 소개하는 것은 미국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는 한국 여성의 글입니다. 내 생각과 많이 비슷해 거의 그대로 소개합니다. ‘젠틀맨’뮤직 비디오를 가장 많이 본 나라는 22일 현재 15.7%인 미국입니다.
|
|
싸이가 새 노래를 발표했다는 날 A가 유튜브를 열었다. 호기심에 가득 찬 학생들과 나는 그의 사무실로 뛰어 들어가 컴퓨터 주위에 둘러섰다. 이번에는 또 어떤 노래일까 사뭇 궁금했고 기다려졌다. 화면에서는 노래가 시작되고 싸이의 새로운 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노래는 끝났다. A는 유튜브를 끄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각자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모두들 벌쭘한 얼굴로.
싸이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학생들이나 A는 나를 배려해서 아무 코멘트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침묵을 깨고 “I don't like this one!”(나 이거 좋아하지 않아!)이라고 했다. 그러자 모두들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노래에 비해 이건 아니란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시청했다고 한국의 방송매체들은 극찬했지만 그것은 첫 번째 노래를 좋아했던 사람들의 관심과 호기심에 의한 시청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KBS 방송심의에서 ‘젠틀맨’이 방송에 부적절하다는 판정을 받았다는 뉴스를 접했다. KBS는 싸이가 주차금지 시설물을 발로 차는 장면이 공공시설물 훼손에 해당돼 방송에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 한 가지 이유뿐이었을까. 적어도 내게는 비디오를 보는 내내 불편했던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여성을 자리에 앉히면서 의자를 슬쩍 빼내 넘어지게 하고 운동기구 트레드밀을 타는 여성을 속도를 높여 떨어지게 하면서 재미있어 하는 표정, 방귀를 뀐 뒤 여성의 코에 손을 가져다 대는 장면, 어린이들이 갖고 노는 공을 빼앗아 차버리고 여성의 배를 쓰다듬는 엉뚱한 성애, 브래지어 끈을 풀어내 곤혹스럽게 만들고 전신주를 끌어안고 추잡한 춤을 추는 장면, 길 가의 시설물을 엉덩이에 박고 춤추는 장면, 커피 마시는 여성의 커피잔을 떨어뜨리고 재미있어 하는 장면. 너무나 많은 장면이 눈을 거슬리게 했다. 게다가 “마더 파더(mother father)” 같은 기이한 말을 속된 뜻으로 전락시킨 것에 강한 거부감을 갖게 됐다.
이런 저속한 장면과 언동이 섹스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인기를 염두에 둔 의도였다면 그것은 싸이의 격이나 질을 저속하게 만드는 것이고, 싸이의 뒤에 따라다니는 코리아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것이다. 비디오에서 싸이는 무례하고 품위 없는 남자였다. 아무리 저급하고 껍데기뿐인 남자라도 여성을 자리에 앉히면서 슬쩍 의자를 빼내어 넘어지게 하는 사람은 없다. 춤과 노래 이전에 인간의 소양과 격조가 부족한 천박한 문화의 산물일 뿐이다.
기본적인 품위가 부족한 이런 춤과 노래로 세계 시장에서 인기를 석권하려 했다면 예술 수명은 길지 못할 것이다. 설혹 인기가 계속 높아진다 해도 그것은 진정한 한류의 이미지도 아니요 인간을 감동시키는 진정한 예술과 문화가 아닐 것이다. 싸이의 비디오를 보면서 나는 불쾌하고 침울하고 조금은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KBS의 부적격 판단에 대해 “한류문화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고 비난하는 반응이었다. 어느 정치인은 권위적인 잣대보다는 ‘젠틀맨’의 경제효과, 국위 선양, 표현의 자유 문제 등을 고려하기 바란다고 논평했다.
한류라는 말의 본질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아닐까. 과연 이런 상품을 가지고 세계로 나와 모든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국인들의 문화가 인류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한 획을 그을 수 있을 만큼의 휴머니즘과 모럴을 갖췄으면 좋겠다. 인간성에 바탕을 둔 예술 철학과 깊은 예술적 혼이 없는 인기와 명성은 하루아침에 물거품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
|
이 글의 지적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싸이의 ‘젠틀맨’은 아주 비신사적입니다. ‘흥부전’에 나오는 못된 놀부의 행태 그대로입니다. 그가 생긴 대로, 놀던 대로 하다 보니 만들어진 것이 ‘강남스타일’이라면 이번 것은‘생긴 대로+계산한 대로’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부러 더 망가지고 일부러 더 추잡하고 천박하게 변태적으로 노는 모습을 싸이는 열심히 일부러 전 세계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싸이로서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싸이가 아닐 것입니다. 걱정스러운 것은 우리 사회의 난폭하고 무례하고 천박한 문화를 조장하는 점입니다. 싸이가 그러지 않아도 우리 사회는 이미 충분을 넘어 지나칠 만큼 난폭하고 무례하고 천박합니다. 싸이의 폭발적인 히트와 인기는 이런 문화를 조장 확산 유포 전파하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랑스러워하고 기대하는 한류의 진흥과도 어긋나는 점입니다.
이런 비판을 하면 흔히 요런 말을 듣게 됩니다. “넌 패러디도 모르냐?”, “시방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겠다는 거여?” “그렇게 엄숙하고 고루하게 살 거면 조선시대에 태어나지 그랬어?” “웃자고 한 일인데 뭘 그리 목숨 걸고 따지고 대드슈?”…. 경우가 조금씩 다르지만 ‘나꼼수’ 식의 무책임한 폭로, 폭력적이고 음란한 동영상, 개인 정보를 마구 퍼뜨리는 신상 털기 사례가 말썽이 될 때마다 흔히 듣게 되는 반론이자 변명입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젠틀맨’의 문제점 지적을 갖은 욕설로 매도하는 댓글이 많습니다. KBS의 방송 불가 판정에 대해 “그 주차금지 시설물은 공공 시설물이 아니라 거주자 우선주차 자리에 개인이 세워놓은 거잖아? 방송불가 판단에 문제가 있어.”라고 주장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시설물의 공공성, 우리 사회가 더욱 지향해야 할 ‘타인 배려(또는 상호 배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싸이가 서울시립도서관에서 춤추며 비디오를 촬영한 것도 좋지 않습니다. 촬영장소는 원래 도서관인지 어린이 놀이터인지 알 수 없던 곳입니다. 독서인구 확대 차원에서 도서관을 아이들 친화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서울시의 취지는 알겠지만, 도서관에서는 도서관 본래의 정숙한 분위기와 행동양식이 존중돼야 합니다. 그걸 허물고 타파하는 데 싸이는 아주 강력하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웃자고 한 일’이 특히 문제입니다. 왜 웃어야 하는가? 왜 꼭 웃어야 되고 늘 패러디를 해야 하는가? 내가 보기에 웃음과 패러디는 지금 넘쳐 흘러서 다시 흘러 넘칠 지경입니다. 이 세상엔 웃으면 안 되는 경우가 많고 웃음을 참아야 마땅할 때도 있습니다. 웃지 않고 진지한 표정과 경건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바로 골이 나 있거나 화가 나 있는 상태는 아니며 그것이 곧 ‘어떤 방식으로든 해소해야 할 상황’인 것도 아닙니다.
‘젠틀맨’은 진지한 문화, 철학과 기품이 담긴 문화, 고급하고 깊은 문화의 취약함을 거꾸로 잘 알게 해줍니다. 연초의 대단했던 ‘레미제라블’열풍은 인류 보편의 가치인 휴머니즘과 고난 극복, 생명력이 장구한 모럴의 의미를 다시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것은 고전이고 이것은 아무나 즐기는 대중문화라고 갈라서 생각해 버리면 안 됩니다. 공공성은 여전히 미약하고 진지함은 갈수록 실종돼 가는 사회, 이것이 지금 우리의 가장 큰 문제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싸이의 ‘젠틀맨’은 진지한 문화, 숙성과 발효기간이 길고 향이 그윽한 문화의 의미와 가치를 인정하지 못하게 만들고, 오히려 상대적으로 훼손하고 있습니다. “알랑가 몰라 왜 화끈해야 하는지.”라고 ‘젠틀맨’은 시작됩니다. 그 말을 본따 “알랑가 몰라 왜 이런 지적을 하는지”라고 되받고 싶어집니다. 싸이 자체, ‘젠틀맨’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싸이는 한 명의 가수이면서 이미 하나의 현상이기 때문에 이런 질문과 비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냥 보고 즐기기나 해! 당신들이 언제부터 그렇게 싸이를 아끼고 좋아했다고.” 이렇게 쏘아붙이는 걸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젠틀맨’이 부정적인 문화를 증폭시키는, 일종의 확성기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젠틀맨’을 보면서 그와 많이 다른 것, 그것과 아주 반대인 것들을 생각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