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25

존경과 두려움 (2009년 6월 13일)

이 경장, 지난 금요일엔 미안했어요. 맞아요, 이 경장과 동료들은 다만 직무를 수행 중이었고, 효자동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리는 경복궁으로 가는 모든 골목에 정복경찰을 배치해 통행을 막은 건 이 경장이 아니었어요. 그러니 이 경장이 성난 중년 앞에서 당황한 건 당연했지요. “어디 가십니까? 영결식 초청장을 보여주세요. 초청장이 없으면 못 갑니다” 했을 뿐인데 그 여성은 몹시 화를 냈으니까요. 그건 바로 그 세 문장 때문이었어요. 노태우 대통령 시절 정부종합청사에서 세종문화회관을 향해 가다 들은 유사한 문장을 상기시켰거든요. “어디 가요? 오페라 티켓 있어요? 티켓 없으면 돌아가요.” 나중에야 그날 저녁 노 대통령이 세종문화회관에 오페라공연을 보러 올 거라는 얘길 들었었지요. 이제 알겠지요? ..

한국일보 칼럼 2009.10.31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2009년 1월 28일)

꼭 일 년 만입니다. 두루마기 차림으로 차례 상에 제주를 올리시는 걸 보니 건너편에 앉아계실 할아버지, 할머니, 누대 조상님들의 음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80여 년 낡은 무릎을 힘겹게 굽히고 앉아 가만가만 지난 일 년의 희로애락을 보고하는 모습은 영락없이 부모님 앞에 성적표를 내놓은 초등학생입니다. 언젠가 아버지의 노트에서 이런 구절을 보았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내 신앙의 대상을 조상과 선산의 묘소에 두고 살아왔다. 내 조상이 위대하고 전지전능하지는 못할망정 당신들의 자손인 나를 사랑할 것이고 나 자신 그 분들로 인해 태어났기 때문이다.” 엊그제 시립 은평노인종합복지관에서 230여 명의 홀몸 노인들이 합동 차례를 올렸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차례 상 앞에 섰을 그 분들을 생각하니..

한국일보 칼럼 2009.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