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제주도를 사랑하는 법 (2009년 3월 11일)

divicom 2009. 10. 31. 11:12

키위는 제주도 키위, 당근도 제주도 ‘흙당근’만을 고집하지만 직접 가는 건 오랜만입니다. 비행기가 난기류를 통과하느라 심하게 흔들립니다. 옳은 일보다 옳지 않은 일을 많이 해서 벌을 받는가, 잠시 하늘의 심판을 생각합니다.

 

마침내 제주. 바닷바람이 이마를 씻어줍니다. 한창 성이 났을 때조차 곡선으로 솟구치는 바다, 둥글게 구르는 산들, 비뚤비뚤 밭을 그리는 밭담들, 거리에서 집으로 굽이굽이 이어지는 골목 올레, 검은 흙과 검은 돌, 엎드려 바람을 맞는 초가집의 검은 돌 박힌 벽, 유채꽃과 해녀, 무엇보다 사람의 동네를 기웃거리는 낮은 하늘이 아름답습니다. 그래, 서울은 천박한 졸부들의 놀이터가 되었지만 제주야 너만은 언제나 지금 같아라, 염원합니다.

 

-기울어지는 제주-

 

송악산에 오르니 바다 건너 산방산과 군산이 당당하고도 담담합니다. 제주도 산에는 봉우리 대신 오름이 있습니다. 용암이 흐르며 나무와 풀을 지워 흙이 드러난 흔적이지요. 숱 없는 아버지의 정수리를 보며 아버지의 세월을 생각하듯, 오름을 보며 산의 나이와 속마음을 헤아리는데, 제주 출신 동행이 말합니다, 저곳에 50층 건물이 선대요.

 

제주도가 말레이시아 버자야그룹과 ‘버자야 제주 리조트(BJR)’를 설립, 서귀포시 예래동 일대에 ‘예래 휴양형 주거단지’를 조성한답니다. 2015년까지 18억 달러를 투자, 50층짜리 레지던스호텔, 37층짜리 리조트호텔, 27층짜리 카지노호텔 등을 지을 거라고 합니다. 표고 335미터인 군산과 394미터인 산방산 앞에 240미터, 170미터, 146미터짜리 콘크리트 구조물들이 선다니 제주도가 기울어질 것 같습니다. 문득 제주시 오등동에 있는 인터넷미디어 회사 ‘다음’의 글로벌미디어센터가 떠오릅니다. 많은 직원을 거느린 첨단 회사지만 제주 바람의 통로를 기본으로 설계한 건물은 2층 같기도 하고 4층 같기도 한 자연의 일부입니다.

 

당초 5층 이하 호텔과 의료시설을 짓겠다던 BJR측이 50층 호텔로 랜드마크를 만들겠다며 사업계획 변경을 요청하자 제주도가 그걸 승인했다고 합니다. 초고층 건물은 제주의 스카이라인이나 예래동의 자연 지형과 맞지 않는다며 반대하던 도의회도 어느새 조용하고, 경관은 물론 마을의 상징인 ‘논짓물’과 용천수의 훼손을 걱정하는 주민들의 목소리도 잊힌 것 같습니다. 논짓물은 바닷물과 용천수가 만나는 특이한 노천탕으로 “세계 어떤 관광지랑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는 게 다녀간 사람들의 평입니다.

 

김태환 제주지사는 예래단지가 조성되면 관광객이 획기적으로 증가할 거라고 하지만, 관광은 특정 지역에 고유한 풍광과 삶을 통해 자신을 재발견하는 일인데 과연 고층시설 때문에 손님이 늘어날까요? 김 지사는 또 6,300명의 고용효과, 소득 1,428억 원, 생산 7,741억 원, 부가가치 4,130억 원 등의 경제효과가 있을 거라고 주장합니다. 주민들이 반대하는 해군기지 건설을 밀어붙이며 내놓는 주장과 일맥상통합니다. 과연 이 사업들이 제주사람들을 부자로 만들어줄까요? 최근 통계청 발표를 보면 우리나라 군사도시들의 고용률은 낮고 실업률은 높다고 합니다.

 

-이름뿐인 평화의 섬-

 

2005년 초 정부에 의해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된 제주도지만, 60만 명도 안 되는 섬사람들은 이제 수백, 수천 억 원의 돈을 좇는 사업으로 인해 분열되었고 제주의 평화는 이름뿐입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건물들은 눈엣가시가 되어 두고두고 사람들 마음의 평화를 깨뜨리겠지요.

 

도의회도, 또 내년 도지사 선거를 벌써 준비하느냐는 비판을 받는 김 지사도 모두 제주를 사랑할 겁니다. 다만 사랑의 방법을 모르는 거지요. 마침 오늘 제주와 서귀포에선 예래동의 운명을 놓고 공청회가 열립니다. 이 공청회에서 ‘자연생태 우수마을’ 예래동을 바르게 사랑하는 법이 나오기를 기원합니다.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남아있게 하기 위해 하늘이 해일과 지진을 일으키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