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 10

스토크 사건과 전문가의 힘 (2022년 1월 29일)

정초에 손님이 사들고 온 꽃 덕에 한 3주 집안이 환했습니다. 아름다움에 반해 이름도 묻지 않고 받아들고는 시든 후의 아름다움까지 만끽했습니다. 홀로 남은 화병이 안쓰러워 꽃집에 갔습니다. 동네의 꽃집들 중 가장 나중에 생긴 듯한 집으로 갔는데 손님으로 보이는 사람과 대화 중이던 주인에겐 저와 동행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어서 오세요.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라고 했으면 기다렸을 텐데 아무 말 없이 하던 말만 하기에 잠시 꽃을 구경하다 나왔습니다. 산책 삼아 100미터쯤 걷다가 다른 꽃집에 들어갔습니다. 그 집에서도 주인인 듯한 사람은 누군가와 대화 중이었지만 조금 전에 보았던 주인과는 아주 달랐습니다. 금세 정말 우리를 반기는 듯한 "어서 오세요"를 들었습니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꽃을 보는 순..

나의 이야기 2022.01.29

노년일기 103: 틱낫한 스님과 죽음 (2022년 1월 27일)

새해 들어서며 부쩍 죽음을 생각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삶을 낭비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겠지요. 그런데 스승이 말씀하셨습니다. 생각은 낡은 것이니 생각 따윈 하지 말고 매일, 순간순간 죽으라고. -- 인도의 철학자 J. 크리슈나무르티(Jiddu Krishnamurti: 1895-1986), . "당신은 죽음 없이 살 수 없다. 이것은 지적 역설이 아니다. 하루하루 마치 그것이 새로운 아름다움인 양 완벽하게 살려면 어제의 모든 것은 죽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당신은 기계적으로 사는 것이고 기계적인 마음은 사랑이 무엇인지 또는 자유가 무엇인지 결코 알 수 없다... "죽음은 새로 태어나는 것이요 변화이며, 그 안에서 생각은 전혀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다. 왜냐하면 생각은 낡은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이..

나의 이야기 2022.01.27

세계는 하나의 문장 (2022년 1월 24일)

낭비 많은 1월이 저물어 갑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는 세계에서의 나날이 정신과 육체를 힘들게 하여 에너지의 낭비를 초래합니다. 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유(시몬느 베이유: Simone Weil: 1909-1943)의 말이 떠오릅니다. 환상이 아닌 실재적 앎을 알기 위해서 정신과 육체를 소진시켜 마침내 세계라는 문장의 의미를 알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요?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죽음! "세계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 한 文章이다. 우리들은 애써 가며 그 의미를 하나씩 하나씩 풀어나가는 것이다. 이 노고에는 언제나 肉體도 참여한다. 외국어의 알파벳을 배울 때처럼. 이 알파벳은 글자를 많이 써보면서 익혀야 한다. 이러한 노고가 없다면 단순히 사고의 방법을 아무리 바꾸더라도 幻像에 지나지 ..

오늘의 문장 2022.01.24

백남준의 '다다익선' (2022년 1월 21일)

어제는 '대한(大寒).' 이로써 2021년 신축년(辛丑年)의 24 절기가 모두 지나갔고, 2월 1일 설날부터 임인년 (壬寅年)이 시작됩니다. 절기의 문을 여는 '입춘(立春)'이 2월 4일이니 봄이 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019년 12월 인류를 찾아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떠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삼년 째 머물고 있습니다. 모이기 좋아하던 사람들이 홀로 있기를 강요당하고 돌아다니기 좋아하던 사람들은 발이 묶였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이 더 이상 유용한 가치가 아니라며 '소소익선(少少益善)'을 강조합니다. 비디오아트의 아버지로 불리는 백남준 씨(1932-2006)가 이 팬데믹 세상에서 작업 중이었다면 '다다익선'과 다른 작품으로 인류의 미래를 보여 주었을 것 같습니다. 2018..

동행 2022.01.21

노년일기 102: 월든 (Walden) (2022년 1월 18일)

生에 대한 회의가 극에 달했던 대학 1학년 때 에머슨 (Ralph Waldo Emerson: 1803-1882), 소로우 (Henry David Thoreau: 1817-1862) 같은 초월주의 시인들에게서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회의'를 '결심'으로 누르며 살았는데 언제부턴가 '결심' 위로 '피로'의 그림자가 짙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무거운 피로를 밀어올리며 중력의 세계에 계속 존재해야 하는가 회의가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런걸까요? 지난 연말부터 자꾸 소로우의 이 생각났습니다. 그런데... 집안의 모든 책꽂이를 다 뒤져도 원서도 번역본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학가에 살지만 서점은 하나도 없습니다. 시장 가는 길에 있는 작은 헌 책방에 들러 보았지만 없었습니다. 인터넷 서점보다는 책을 직접 만..

나의 이야기 2022.01.18

노년일기 101: 금쪽같은 내 새끼 (2022년 1월 15일)

사과를 먹지만 사과를 모릅니다. 지구에 살지만 지구를 모릅니다. 미샤 마이스키의 연주를 좋아하지만 마이스키도 첼로도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무엇을 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인데 그 중에서도 알기 어려운 건 자신입니다. 어린 시절 저는 여자들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투쟁에 시달린 탓이었다는 걸 훗날에야 알았습니다. 저는 가급적 여럿이 모이는 자리나 시끄러운 곳을 피하는데 어린 시절 좁은 집에서 오 형제가 복대기며 자란 탓이 클 겁니다. 저 자신을 잘 알진 못했지만 제게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는 건 알았습니다. 그래서 결혼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제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타인과 한 집에서 산다는 건 마이너스에 마이너스를 얹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때로 상황은 의지를 압도합니..

동행 2022.01.15

신부님, 이태석 신부님, 그리고 배추 (2022년 1월 12일)

직접 만나도 아무런 영감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영상이나 책으로만 만났는데 평생 잊히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태석 신부님 (1962-2020)은 바로 그 잊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이틀 후 14일은 신부님의 기일입니다. 신부님, 하느님 나라에서 묵은 피로 다 푸셨나요? 어제 신문 칼럼에서 이태석 신부님 얘길 읽다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멀리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배추를 키우셨다는 얘기였습니다. 신부님은 살아서도 돌아가신 후에도 건조한 눈과 마음을 적셔 주십니다. 떠났으나 떠나지 않은 우리의 아름다운 동행 이태석 신부님, 신부님이 키운 토마스 타반 아콧이라는 동행... 하느님, 이들을 축복하시고 이들을 동행으로 둔 우리가 우리의 행운을 기억하며 부끄러워 하게 하소서. 이선의 인물과 식물 이태석 ..

동행 2022.01.12

노년일기 100: 두 세계의 만남 (2022년 1월 9일)

만남 중에 쉬운 만남은 없습니다. 아니, 의미 있는 만남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는 게 옳겠지요. 오늘 저녁 어머님아버님과 만나기 위한 준비도 며칠 전에 시작했습니다. 사진으로만 뵌 아버님, 한참씩 저희와 동거하신 어머님, 아버님은 룸메의 십대 중반 떠나시고 어머님은 2014년에 떠나셨습니다. 작년에 뵈었으니 꼭 일 년 만입니다. 적어도 9시부터는 두 분께 대접할 음식 준비에 들어가야 합니다. 제사는 우상 숭배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른 차원에 거주하는 두 분과 저희 가족이 상 앞에서 사랑으로 만나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일 년 처음 하는 일을 하여 돈을 번 두 분의 손자가 제사 비용을 내주어 오늘 제사상엔 구경만 하고 산 적은 없었던 샤인머스캣도 올라갑니..

나의 이야기 2022.01.09

Facebook's Comedy of Errors (2022년 1월 6일)

이 블로그에 쓰는 글 중 어떤 것은 제 페이스북 계정 (https://www.facebook.com/futureishere1/?ref=py_c)에도 게재됩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디지털 세상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지만 어머니를 바깥세상과 연결하려는 아들의 노력 덕에 페이스북 계정이 있습니다. 전에도 여기에 한 번 쓴 적이 있지만, 페이스북 측에서는 제가 우리말로 쓴 글을 영어로 번역해 싣곤 하는데 그 영어란 것이 아주 엉망진창입니다. 전담 직원이 있을 것 같진 않고 초기 단계의 AI에게 맡기는 듯, 우리가 사는 '이승 (this world)'을 사람 이름 '이승'으로 인식, "Lee Seung"으로 쓰는 식입니다. 처음 한두 번은 웃어넘겼지만 이런 일이 되풀이되니 기분이 나빠져 영어로 불쾌감을 표현하는 글을..

'작심삼일'이라도 (2022년 1월 3일)

'호랑이해 (임인년: 壬寅年)'가 시작되고 3일 째입니다. 뼈만 남은 나무들 사이로 검은 무늬 호랑이들이 사람의 세상을 응시하는 것 같습니다. 저 시선에 부끄럽지 않게 떳떳하게 살아야겠습니다. 바야흐로 '결심'의 계절입니다. 결심의 결과가 어찌 되든 결심을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적어도 결심의 순간만은 그 일을 하리라 혹은 하지 않으리라 마음먹는 것이고, 마음을 먹는 것은 행위의 첫 걸음이니까요. 결심은 늘 '작심삼일'을 수반하지만 '작심 (作心)'하지 않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좋겠지요. 작심이 3일로 끝난다 해도 그 3일은 또 다른 3일로 이어지니까요. 우리말 산책 작심삼일, 새해에는 그거라도 많이 합시다 엄민용 기자 2022년 새해가 시작됐다. 다들 한두 가지 새해 결심을 했을 듯싶다. 누구는 ‘작심..

오늘의 문장 2022.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