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말일에 출범한 교통방송 '즐거운 산책'이 6개월이 되면서 개편되었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 오전 8시 6분부터 9시까지 하던 것을 일요일 오전 7시부터 9시까지로 바꿨는데, 오늘 처음으로 바뀐 시간대에 방송이 나갔습니다. 4부로 나뉘어 진행한 프로그램... 어떻게 들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의 시'로는 박종해 시인의 ‘대숲을 거닐며’를 읽어드렸고, '오늘의 노래'로는 바리톤 송기창 씨가 부르는 '아리수 사랑'을 틀어드렸습니다. '대숲을 거닐며'는 1981년 11월에 나온 ‘반시’ 동인 여섯 번째 작품집 ‘반시(反詩)’에 수록된 시입니다.
‘반시(反詩)’는 1976년에 창간된 시동인지로 주로 1973년 신춘문예 당선자들과 젊은 시인들이 참여해 만들었습니다. 1972년 ‘유신헌법’이 발효되어 표현의 자유가 심하게 억압당하던 시절, ‘삶이 곧 시’이며 ‘시야말로 삶을 표현하는 유일한 수단’이라며 출범한 시운동입니다. 올해 만 예순이 된 박종해 시인이 당시 이 시집에서는 ‘신예 시인’으로 소개되고 있으니 새삼 시간이 화살처럼 빠름을 느끼게 됩니다.
대나무는 꽃이 잘 피지 않아, 100년이나 기다려야 꽃이 피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한 뿌리에서 나온 줄기는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 같은 해에 꽃을 피우며, 한 뿌리에서 나온 줄기를 떼어서 다른 곳에 심어도 원래 줄기와 같은 날 꽃을 피운다니, 제 뿌리를 잊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나무를 따라갈 자는 없을 것 같습니다.
대숲을 거닐며
대숲을 거닐면
왠지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꺾이고 벗겨져
용렬하게 고개 숙여 가라앉아
생활의 문고리 잡고 써내려 가다보면
곧고 늘 푸른 마음으로
만나는 그대.
비굴하지 말아라.
비굴하지 말아라.
대숲은 청초한 그늘을 드리우고
더럽혀진 나의 옷자락을 지운다.
대숲을 스치는 바람소리.
홀로 깨어 있는 자의 귀에만 들릴지니
타협하지 말아라.
타협하지 말아라.
대숲을 거닐면
왠지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아리수 사랑’은 신달자 시인의 시에 이안삼 선생이 곡을 붙인 가곡입니다. 아시다시피 ‘아리수’는 한강의 옛 이름이며, 서울시에 공급되는 수돗물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아리수 사랑
푸르른 살결 위에
푸르른 하늘이 덮었다
아침마다 푸르른 강이 태어나고
천년 생명의 메아리가 울렸다
기우는 해도 달도 몸에 품었다
기우는 해도 달도 품었다
기우는 해도 몸에 품었다
역사의 환란도 몸에 담았다
역사의 환란도 몸에 담았다
아리수여 아리수여 아 아리수여
다시 새천년을 잉태하는 푸르른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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