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로버트 레드포드라는 큰 별 (2025년 9월 17일)

divicom 2025. 9. 17. 11:38

우주엔 별이 가득합니다. 사라지는 별이 있고

태어나는 별도 있습니다. 별이 지는 것은 뜨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어떤 별이 질 때

우리는 큰 소리로 울고 어떨 때는 숨죽여 울고

어떨 때는 가슴으로 울고, 또 어떨 때는 아주 오래

안타까워합니다.

 

어제 미국 유타주 자신의 집에서 숨진 로버트

레드포드 (Robert Redford: 1936-2025)의

죽음은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그와 같은 영혼을

지닌 사람에게 이 세상이, 도널드 트럼프가 지배하는

미국이,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을지 잘 아니 그의

죽음을 슬퍼할 수는 없지만, 그와 같은 인격이

사라진다는 건 인류의 손실입니다.

 

1960년에 배우로 데뷔한 레드포드는 60년 가까운

기간 동안 ‘내일을 향해 쏴라(1969)’ ‘스팅(1973)’

'추억' 등 수많은 명작에서 주연을 맡았으며, 감독으로도

활약하며 '보통사람들(1980)' '흐르는 강물처럼(1992)'

'퀴즈쇼(1994)'를 비롯한 여러 작품을 연출했습니다.

 

그는 또 선댄스 영화제를 만들어 독립영화인들에게

힘을 준 사람입니다.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에서 자신이 맡았던 배역

'선댄스 키드'에서 이름을 딴 선댄스 영화제는 거대 

자본의 영향을 받는 할리우드 밖에서 독립적 목소리를

내는 신인 감독들의 등용문이 되었습니다. 

 

그가 2012년에 출연했던 영화 '올 이즈 로스트 (All

Is Lost)'는 선댄스 영화제에서 첫 작품을 상영했던

J.C. 챈더 감독의 두 번째 영화였습니다. 로버트

레드포드는 그 영화 출연 당시 76세였지만, 물 속에서

사투를 벌이는 유일한 출연자 역을 멋지게 해냈습니다.

 

그는 또한 평생 활동가(activist)였습니다. 근 30년 동안

천연자원 보호와 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을 촉구하는 

환경운동가로 활동하며, 2012년 2월에는 환경 전문

블로그 onearth.org에 제주도 강정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을 매우 싫어하여 2019년에 워싱턴

포스트에 쓴 글에서는  "우리 대통령은 무엇이든 손댔다

하면 나쁘게 만든다(we have a president who degrades

everything he touches.)”라고 썼고, 다른 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은 독재자 같다(dictator-like)고 썼습니다.

 

그는 대표적인 미남 배우였지만 늙음을 거부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늙었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배우들이 있지만

젊은 주연 배우들 중엔 얼굴에 손을 대지 않은 사람이 

드무니 참 비감합니다.

 

요즘 한국의 방송사들은 새로운 작품을 제작하기보다

옛 영화나 드라마를 재탕, N탕 하는 일이 많은데,

로버트 레드포드가 출연했던 영화들을 좀 보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폴 뉴먼과 함께했던 '스팅'은 여러 번 재방송했으니

바브라 스트라이전드와 함께했던 '추억', 메릴 스트립과

함께했던 '아웃 오브 아프리카', '내일을 향해 쏴라' '올 이즈

로스트'를 보여주면 좋겠습니다.

 

영화 '은밀한 유혹(1993)'에서 로버트 레드포드와 함께했던

배우 우디 해럴슨은 로버트 레드포드는 '멋지게 웃고 짓궂은

유머에 능한 진짜 신사'였다며 "나는 그가 몇 살 때든 그의

속에 있는 어린이를 볼 수 있었다. 그는 별들이 가득한

창공에서도 가장 환하게 빛날 것이다(“I could always see

the kid in him, no matter his age. He stands the brightest

among a firmament of stars.” 라고 추모했습니다.

 

해럴슨의 말처럼 로버트 레드포드라는 큰 별 덕에 오늘 밤

하늘이 환할 것 같습니다. 삼가 그의 명복을 빕니다.

로버트, 당신 덕에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Robert Redford, circa 19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