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B-C-D라는 말이 있습니다. Birth-Choice-Death.
출생-선택-죽음. 그 셋 중에 인간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선택' 뿐입니다. 어떤 이의 선택을 보면 그의
됨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신영오 교수님이 살아 계실 때는 그분을 몰랐으나
그분의 마지막 선택 덕에 그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러운 마음으로 그분의 자유와 평안을 빌며,
그분의 선택을 지지한 부인과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아래는 한국경제 기사입니다.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5090310727
장지가 연세대? 명예교수의 마지막 선택…'노블레스 오블리주' 빛났다
"고인의 장지는 흙이 아닌 교육의 현장"…큰 울림

지인의 부고장에 적힌 장지가 선산이나 묘지, 추모공원이 아니라 '대학교'라면
어떤 생각이 들까. 최근 별세한 신영오 연세대 생명시스템대학 명예교수는 장지로
'연세대학교'를 선택해 마지막까지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줬다.
신 명예교수는 지난달 22일 향년 85세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재산 대부분을 기부했을 뿐 아니라, 자기 몸마저 의대 교육용으로 내놓으며
삶의 마지막까지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사회 상류층의 도덕적 의무)'를
실천했다.
연세대와 유가족에 따르면 고인은 평생 살아온 연세대 인근 염리동 집과 부지를
학교 및 대한성서공회에 나눠 신탁 기부했다. 처음 기부 의사를 밝힌 것은 2015년.
당시만 해도 추정 가치 70억원이던 부동산은 현재 200억원대에 달한다. 고인은
또 사후 시신까지 연세대 의대 해부학 실습용으로 기증했다. 시신 기증 서약에는
고인의 아내도 동참했다. 해부학 실습에 쓰이는 시신은 의대생들에게 생명 존중과
의사로서의 첫 사명을 일깨워 '무명의 스승'으로 불리는데, 고인의 선택이 새내기
의사들에게 전하는 '최후의 강의'가 된 셈이다.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고인은 늘 자식들에게 '교육해주는 것 말고는 물려줄 게
없다'고 말했었고, 가족 모두 고인의 의사를 존중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평소
철학이 기부와 기증으로 이어진 것이다.
고인은 생전 "이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라"고 당부했기 때문에 지인들조차
부고장에 적힌 장지 연세대학교'를 보고서야 시신 기증을 짐작할 수 있었다고.
연세대의 한 동료 교수는 연합뉴스에 "고인의 장지는 흙이 아닌 교육의 현장이었다.
그의 삶은 개인을 넘어 사회를 밝히는 등불로 다시 타올랐다"고 전했다. 연세대는
집을 기부한 뒤 마땅한 거처가 없어진 고인의 아내에게 교내 고급 기숙사인
'에비슨하우스'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신 명예교수는 1961년 연세대 화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미시간주립대에서 토양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미시간주립대 연구원을 거쳐
1973년 귀국해 연세대 이과대 조교수로 재직하면서 농업개발원 원장을 맡았다.
연세대 농업개발원은 현 연세유업의 전신으로, 고인은 당시 낙후된 국내 낙농 현장에
우유 대중화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연세대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에는
국내 토양 분류체계를 새롭게 확립하고, 30여편의 학술 논문을 발표하는 등
토양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도 크다.
이보배 한경닷컴 객원기자 newsinf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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