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마다 열기가 어리고 풀마다 시든 여름,
체온에 육박하는 기온을 타박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35, 6도가 이런데 40도 넘는 곳은
어떨까요?
더워서 힘들다는 생각이 드는 찰나, 그래도
이 정도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 덥지
않아 다행일 뿐만 아니라 공기가 나쁘지
않으니까요.
봄이 미세먼지 세상이 되면서 아침이면 먼지
예보를 보는 게 습관이 되었는데, 올 여름은
거의 항상 '좋음'이나 '보통'입니다. 기온이 높아
힘든데 미세먼지마저 '나쁨'이었다면 얼마나 더
괴로웠을까요? 이글거리는 지상에서 파란 하늘을
올려다볼 때마다 감사합니다.
별로 좋지 않은 상황에서 더 나쁜 상황이 되었을
수도 있음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버릇은 언제 생긴
걸까요?
산전수전 겪으며 여러 십 년 살다 보니 저도 모르게
생긴 것 같은데, 이 버릇은 고마운 버릇입니다.
이 버릇이 없었다면 그렇지 않아도 주름투성이
검버섯 점박이가 지금보다 더 고약한 성정을 갖게
되었을 테니까요.
지금 이 시각에도 제 안팎에서는 갖가지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티브이에 나오는 얼굴 중엔
사기꾼과 후안무치가 부지기수이고 거리를 걷다 보면
인간 코스프레 중인 동물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그래도 저는 화를 내지 않습니다. 이보다 더 나쁠 수도
있었다는 걸 아는 까닭입니다. 그걸 알게 된 게 나이
덕이라면, 해마다 늘어나는 나이에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