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야로 인해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저만치 잠의 실루엣이 보였지만
잠은 겁먹은 동물처럼 미적미적했지요.
37도가 넘는 낮 후에 찾아온 어둠 속이니
그럴 만도 했지요.
그래도 잠은, 용기 내어 키오스크 앞에
선 노인처럼, 포기하지 않았어요.
가만가만 다가와 다정한 검은 손으로
귀와 눈을 닫아 주었지요. 낯익은
잠의 손길 덕에 열대야를 잊고
꿈나라로 한 걸음 들어섰지요.
내일이 오늘이 되려는 순간이었어요.
잠의 품에서 눈을 뜨면 행복한 하루를
시작하게 되겠구나, 강 같은 평화에
몸과 마음을 담갔어요.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부우~웅, 부우~웅!
동네를 울리는 굉음이 힘겹게 얻은 평화를
조각냈어요. 지나가는 부우~웅이 아니었어요.
잠은 승냥이에게 쫓기는 사슴 꼴이 되어
죽어라 하고 달아났지요.
잠을 유린 당한 제가 룸메에게 물었어요.
저게 무슨 소리죠? 배달 오토바이인가요?
룸메가 피곤한 어조로 말했어요.
이층에 사는 젊은 애 포르쉐 소리요.
낮에도 저러고 밤에도 저래, 틈만 나면.
포르쉐 타는 젊은이여, 나는 당신이 왜
밤낮으로 부우~웅거리는지 몰라요.
그 소리를 좋아할 수도 있고, 자신이 포르쉐를
몬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서일 수도
있겠지요. 당신 인생에 포르쉐보다 좋은
일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을 거고.
사람이 무슨 일을 할 때는 다 이유가 있지요.
당신의 부우~웅에도 아주 좋은 이유가 필요할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열대야 속 사람들의 평화를 조각낸
값을 호되게 치러야 할 테니까요.
아니, 당신에게 합당한 이유가 없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어젯밤 부우~웅으로 살아 있음을 느꼈듯,
언젠가 아주 극심한 고통으로 살아 있음을 느끼며
승냥이 앞의 사슴이 되어 보길 바랍니다. 그때
당신이 '내가 뭘 잘못했기에 이런 일을 겪느냐'고
불평하다가 문득... 어젯밤 일을 떠올리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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