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는 좋아하지 않지만 명지대 앞 롯데리아는
좋아합니다. 거의 20년 전 제가 이 동네로 이사왔을 때도
있던 가게입니다. 거기서 가까운 곳에 맥도널드가 새 건물을
지어 문을 열었지만 롯데리아는 여전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지난 여름 산책 중에 너무 땀이 나거나 햇살을 견딜 수
없을 땐 롯데리아에 들어가곤 했습니다. 그곳은 냉방이
심하지 않은데다 세일하는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천 원도
안되는 값에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 롯데리아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곳이 마음 편한
동네 사랑방 같기 때문입니다. 너무 요란하지 않은
실내장식, 기계적이지 않은 직원들, 언제나 깨끗한
실내 ... 요즘은 화장실 없이 음식을 파는 집들이 많이
있지만 롯데리아엔 넉넉한 화장실이 있습니다.
롯데리아에 앉아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먹다 보면
오래되었지만 정갈한 시골 역 대합실에 있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손님층이 다양해서 어린아이부터 할머니들까지,
명지대에 유학 온 동남아시아 젊은이들부터 부모와 함께
오거나 반 친구들과 함께 온 초등학생, 중고생까지, 두루
불 수 있습니다.
오늘 오후에도 잠깐 들러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젊은 아빠와 어린 딸을 보았습니다. 음식은 다 먹은 듯
마주앉은 두 사람 사이 테이블엔 포장지가 어지러운
쟁반이 있었습니다.
아이는 뭔가 얘기하는데 아빠는 스마트폰에 눈을
고정한 채 고개를 들지도 않았습니다. 아이는 자꾸
목소리를 높였지만 아빠의 관심을 끄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TV에서 본 '문제 아이'들이 떠올랐습니다. 부모들은
자기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TV 프로그램에 출연했지만, 제가 보기에 문제는 거의
언제나 부모에게 있었습니다. 오늘 롯데리아에서 본
아이도 언젠가 그런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될지 모릅니다.
먼 훗날 아이의 기억 속 롯데리아는 제가 생각하는
롯데리아와는 많이 다를 겁니다. 벽 같은 아버지 앞에서
목소리 높여 관심을 구걸하던 장소로 기억될 테니까요.
아이스크림은 달았지만, 참 씁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