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영어를 싫어하는 아이 (2025년 2월 2일)

divicom 2025. 2. 2. 08:04

명절 끝 동네 카페에 가니 손님이 가득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부터 저까지

손님은 천차만별입니다. 

 

왁자지껄 시끄러운데, 아이의 어머니는 아이에게

영어책을 읽으라 합니다. 아이는 몸을 꼬며 싫다고

하고 아이를 채근하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여덟 명

일행의 소음을 넘어 구석에 앉은 제게로  또렷이

전달됩니다. 아이 맞은편의 아빠는 모자의 실랑이를

흘깃거리며 스마트폰을 봅니다.

 

냧익은 풍경이지만 볼 때마다 안타깝습니다.

또 한 명 영어를 싫어하는 아이가 생겨나는 중이니까요.

한국은 한마디로  아이들에게 돈을 써서 영어를

싫어하게 만드는 나라입니다.

 

엊그제 어머니의 기일에 갔던 오빠네 집에서 만난

조카의 아이가 떠오릅니다. 초등학생 시절 영어에

탐닉하는 바람에 조카의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저를 찾아와 상담 비슷한 것을 한 적이 있는데,

중학생이 된 아이는 영어가 제일 싫다고 합니다.

 

부모들은 자녀가 갓난아기일 때부터 영어를

들려주고 댓 살쯤 되면 영어 유치원에 보내며

영어를 잘하는 아이가 되길 바랍니다.

 

그 바람을 비웃듯, 그때부터 영어를 싫어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성장하면서 점차 싫어하게

되는 아이도 있습니다. 영어를 '공부'한 아이치고

성인이 되어서도 영어를 좋아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좋아해야 잘하는데 좋아하지 않으니 잘하기도

어렵겠지요.

 

중학교에 들어가 처음 영어를 접한 제겐 영어가

처음 먹어 보는 음식 같았습니다. 영어로 쓰인

책이 귀하던 시절이라 방과 후 집에 오면 영어

교과서를 소리내어 읽곤 했습니다. 너무 많이

읽어서 낮잠 중에 영어가 입에서 흘러나와 어머니를

놀라게 한 적도 있었습니다.

 

시험기간에 영어 공부를 하지 않아도 영어는 늘 

100점이었습니다. 고동학생 시절부터 영어 소설을

읽다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머리가 하얀

지금도 우리말을 영어로, 영어를 우리말로 번역하고

영어로 시와 소설을 씁니다.

 

아들에게 영어 공부를 강요하는 어머니에게 이런

얘길해주고 싶지만, 말을 걸면 '이상한 할머니'라고

할 겁니다.

 

저의 모토는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할 수 없는 일엔

침묵하자'입니다. 입을 다물고 보던 책을 봅니다.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 1902-1968)의

<토티야 플랫 (Tortilla Flat)>입니다.

1935년에 발표한 소설이지만 여전히 재미있습니다.

 

영어를 안다는 건 영어를 사용하는 세계를 안다는 것,

영어가 세계 공용어이니 영어를 안다는 건 무엇보다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날 가능성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영어 '공부'를 강요하는 분위기에서는 

아무리 한국이 '세계화'되어도, 우물 안 개구리로 늙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해가 바뀌었지만 해묵은 문제들은

여전합니다. 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