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노년일기 212: 풍선껌 부는 '예쁜' 노인 (2024년 4월 29일)

divicom 2024. 4. 29. 11:11

어젠 아마도 생애 처음으로 의정부에 다녀왔습니다.

제 인생은 여러 사람에게 빚지고 있는데, 오래된

빚쟁이 중 한 분인 이모를 뵈러 간 것입니다.

 

용민동에서 제일 좋다는 요양원에 계신 이모가

휠체어를 타신 채 나타나셨습니다.

"이모!" 소리치는 제게 이모는 "아이구 예뻐라!

어쩜 이렇게 예뻐!" 하셨습니다. 윤석열식 나이로

곧 70세가 되는 흰머리에게 예쁘다니요?! 

그리고 곧 깨달았습니다. '아름다움은 보는 이의

눈 속에 있다 (Beauty is in the eye of the

beholder.)더니, 이모는 여전히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1981년 초 어느 날 어머니를 만나러 친구분 댁에

갔다가 그 친구분의 고교 동창생인 이모를 처음

만났습니다. 제가 떠난 후 이모가 저에 대해 물었고,

동창인 집주인이 제가 신문기자이며 지난 가을

아기를 낳았는데 식구가 여섯인 친정어머니는

살림을 해야 하니 아기 봐줄 사람이 없어 고민 

중이라고 얘기하셨다고 합니다. 그 말씀을 들으신

이모가 대뜸 '그럼 내가 봐줄까?' 하셨고, 집주인

아주머니는 깜짝 놀란 채 '그러면 좋지' 하셨답니다.

아주머니가 놀라신 이유는 이모가 당시로선 드물게

대학을 나오신데다 '자존심 강한' 교수 부인으로 

살던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모는 그렇게

제 '이모'가 되셨습니다.

 

이모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은 갈 때만큼 막혔습니다.

멀미가 자꾸 심해지기에 풍선껌을 입에 넣었습니다.

1906년 미국에서 처음 나온 풍선껌은 한국에선

꼭 50년 후에 나왔다지만, 제가 풍선껌을 불기

시작한 건 작년입니다. 나이 들며 새록새록 느껴지는

중력을 덜고 싶어 불기 시작했는데, 풍선을 불어서인지

토하기 전에 집에 도착했습니다. 다음에 이모를

뵈러 갈 땐 꼭 풍선껌을 선물해야겠습니다. 

아흔 넘으신 이모와 풍선껌을 불며 둘이 함께

풍선껌 부는 '예쁜' 노인이 되고 싶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모, 최효진 선생님,

다시 뵈올 때까지 부디 건강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