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노년일기 213: 보청기를 끼세요! (2024년 5월 2일)

divicom 2024. 5. 2. 12:08

오랜만에 간 은행은 노인정 같았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의 80퍼센트는 노인이었습니다.

직원이 없는 창구가 2~30퍼센트쯤 되니

기다림은 길었습니다. 은행은 큰 영업 이익을

기록했지만 창구 직원을 많이 줄였다고 합니다.

 

오전인데도 창구의 직원들이 지쳐 보여

안쓰러웠습니다. 저도 머리가 하얀 노인이지만

어떤 노인들은 미웠습니다.

 

미운 노인들 중엔 귀가 안 들리는 노인이

많았습니다. 은행원이 큰소리로 말해도

안 들린다며 같은 말을 대여섯 번 하게 하는

노인이 흔했습니다. 

 

혼자 은행에 올 정도로 건강하다면 보청기를

맞춰 낄 수 있을 거고, 그러면 은행원은 물론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힘겨움을 다소나마

덜어 줄 수 있을 텐데...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들 중엔 듣지 못함을

한탄할 뿐, 듣지 못하는 자신 때문에 주변인들이

얼마나 힘든지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남들이 자신의 청각장애를 알아채는 게 싫어

보청기를 끼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보청기를

끼면 불편해서 끼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있고,

보청기를 껴도 100퍼센트 잘 들리는 건

아니라서 안 낀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장애는 불편한 것이고 반갑지 않은 것이지만

부끄러운 것은 아닙니다. 장애가 있으면 때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니 굳이

숨기려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장애를 이유로

누군가를 홀대하거나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장애인의 잘못이 아니고 그 사람이

잘못하는 겁니다. 

 

살아 있는 동안 장애를 경험하지 않는 사람은

드뭅니다. 평생 장애 없이 살다가 나이 들어

장애를 겪게 되었다면, 무장애의 시간에 감사하며 

장애를 극복하려 노력해야 합니다. 보장구를

사용해도 장애 이전 상태로 돌아가긴 힘들지만

최선이 안 될 땐 차선이라도 택하는 게 현명합니다.

 

보청기는 안경이나 틀니와 같습니다. 저처럼

눈이 나쁜 사람은 평생 안경과 콘택트렌즈의 

도움을 받아 살고, 이가 빠진 사람들은 틀니를 

끼거나 임플란트를 하고 살고, 사고로 팔다리를 

잃은 사람들은 의수족이나 휠체어의 도움을 받습니다. 

장애의 불편을 덜어주는 도구가 있다는 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분들, 어서 보청기를 끼세요!

힘겹게 일하는 젊은이들을 더 힘들게 하지 말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