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노년일기 196: 간헐적 고문 (2023년 11월 5일)

divicom 2023. 11. 5. 12:32

어머니가 스물넷에 저를 낳아 어머니와 저는

띠동갑이 되었습니다. 띠가 같은 사람은 성격도

비슷할 것 같지만 어머니와 저는 아주 많이 다릅니다.

어머니는 외출과 여행을 좋아하시지만 저는 

좋아하지 않고, 어머니에게 가장 중요해 보이는

'맛'과 '멋'이 제겐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머니와 저는 다른 만큼 부딪치며 살았습니다.

저는 어리고 어머니는 어른인 기간 동안 어머니는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제게 가해하는 사람이었고 

저는 피해자인 줄 모르는 피해자였습니다.

 

젊은 시절엔 늘 어머니의 불운을 상기하며 어머니를

이해하려 애썼습니다. 어머니에게 내 아버지 같은

아버지가 계셨으면 저렇게 되시지 않았을 거라고,

어머니가 나만큼 교육을 받으셨으면 말씀을 저런

식으로 하지 않으셨을 거라고, 우리집 형편이

나았으면 저러지 않으실 거라고...

 

그러나 어머니는 조금도 변하지 않으셨고

저는 '간헐적 고문'을 당하며 나이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만난 자리에서 상처가 되는 말을 자유롭게 

하시고는 헤어진 다음 전화를 걸어 후회하는 어조로

'내 말에 신경쓰지 마라' 하십니다. 

 

아흔을 넘기신 지금 어머니의 고문은 더 강해졌고

어머니의 새 무기는 '아흔'과 '죽음'입니다.

어머니는 제가 당신으로 인해 얼마나 자주 죽음을

생각했는지는 아시지 못합니다. 

 

어제 또 어머니에게 '고문'을 당하고 돌아왔습니다.

머리에 돌을 얹은 듯 무겁더니 아이와 산책하며

가벼워졌습니다.

 

어머니 덕에 저를 돌아보니 저는 운좋은 사람입니다.

저를 이해해주는 아이와 수양딸들이 있습니다. 

'내리사랑'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효도는 인위적인

노력인데, 세 사람은 부족한 저에게 분에 넘치는

효도를 하고 있습니다.

 

전화벨이 울립니다. 번호를 보니 어머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