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서 어머니, 오늘도 그 베이커리 카페에 오시겠지요?
당신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픕니다. 당신의 예쁜 얼굴은
언제나 곧 비를 뿌릴 것 같은 하늘빛이니까요.
한 번도 대화를 해본 적 없는 당신께 이 편지를 쓰는
이유는 안타까움 때문입니다. 두 딸의 어머니로서
당신이 노심초사하는 일들이 당신의 얼굴을 어둡게
만드는 것 같아서입니다.
은서... 2013년 태어난 여자 아이 이름 중에서
열 번째로 많은 이름이라지요? 은서가 태어난 2015년에는
그 이름이 인기 있는 여자 아이 이름 순위표에서 더 높은
자리를 차지했을지 모르지만, 그 사실과 은서의 행복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관계도 없을 겁니다.
그 시끄럽지만 커피값이 싼 카페에서 나는 여러 차례
당신과 두 딸의 옆자리에 앉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당신의 아이들은 당신처럼 예쁘고 총명하고 귀엽습니다.
예쁘고 귀엽다는 건 그냥 보고 느꼈고 총명하다는 건
오가는 대화를 듣고 알았습니다. (일부러 들은 것은
아니고 바로 옆이다 보니 저절로 들은 것이지요.)
발달장애가 감기만큼 흔한 시대에 그런 자녀들을
둔 당신의 행운을 축하하고, 그런 아이들을 이 나라에
낳아준 것에 대해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당신에게 감사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당신의 행운을 잊은 것 같습니다.
스스로 운좋은 사람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라면 당신처럼
어두운 얼굴을 하지 않을 테니까요.
다른 날에도 종종 그랬지만 어제는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은서는 코가 심하게 막혀 입으로 숨을 쉬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당신이 공부하라고 한 영어책에
집중하지 못했는데, 당신은 아이의 코막힘을 걱정하는
대신 왜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느냐고 야단쳤으니까요.
어느 순간 당신이 '은서야, 손이 왜 이렇게 차?' 하고 놀란
소리를 낼 때 나는 이제야 은서 어머니가 은서가 아프다는
걸 눈치채겠구나 생각했습니다. 내가 당신이었다면
나는 바로 아이를 안고 손을 녹여 주었을 겁니다.
그러나 당신은 아이의 손을 녹여 주는 대신 '너 핫팩
어쨌어? 핫팩해!' 질문인지 추궁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했습니다.
은서 어머니, 저는 감히 장담할 수 있습니다. 은서는
결코 어제 당신이 보여준 차가움을 잊지 않을 겁니다.
저는 또한 평생 영어로 밥벌이를 한 사람으로서 장담합니다.
은서가 영어를 아주 싫어하게 될 거라는 걸.
은서 어머니, 은서는 이제 초등학교 1학년입니다.
영어를 공부하느라 시간을 쓰는 대신 어머니의 사랑과
따스함으로 작은 몸을 채우는 데 시간을 써야 하는
나이입니다.
늘 책을 읽는 은서 어머니, 부디 책 읽는 시간을 줄여
아이를 안아 주세요! 먼 훗날 은서가 어머니를 기억할 때
은서의 가슴이 훈훈해지게 해 주세요! 제 가슴에 차오른
슬픔과 분노가 당신에게 말을 걸지 않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