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노년일기 147: 크리스마스날 (2022년 12월 25일)

divicom 2022. 12. 25. 21:03

크리스마스 날 아침 부고를 받았습니다.

뜬금없이... '새로 태어나시겠구나' 생각했습니다.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보니 '울지마 톤즈'를

방영하는 곳이 있었습니다. 처음 그 영화를

보던 때처럼, 아니 어쩌면 그때보다 더 많은

눈물이 흘렀습니다.

 

한 사람이 개인의 안락을 목표로 하는 대신

더 높은 뜻을 세우고 그것을 실현하려 노력할 때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가, 그의 선의와 선행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는가 생각하니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이태석 신부님, 차마 입에 올릴 수 없을 만큼

고결한 이름... 그분 덕에 말갛게 씻긴 눈을 닦고

장례식장으로 향했습니다.

 

하얀 눈은 사라지고 거뭇거뭇한 눈만 가로수 아래

쓰레기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눈은 흰눈일 때 눈 대접을 받고 사람은 의식이 제대로

작동해야 사람 대접을 받으니, 어르신이 어제

떠나신 것은 불행 중 다행일까요...

 

망자가 자손 많은 고령일 때 으레 그렇듯

상주 명단이 길고 문상객도 많았습니다.

북적이는 방의 일원이 되니 상주 이름 하나에

문상객 적은 옆방에 괜히 미안했습니다.

 

막 아버지를 여읜 며느리를 영안실에 보내놓고

혼자 계실 어머니가 자꾸 생각났습니다.

아버지 살아 계실 때 크리스마스는 축일이었습니다.

가족 누구도 기독교도가 아니었지만 케이크를 사다

초를 밝히고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했습니다.

 

저녁 식사 시간이 멀지 않았기에 케이크 대신 

피자 한 판을 사들고 어머니에게 갔습니다.

어제 떠나신 사돈어른보다 한 살 어리신 우리 어머니...

어머니를 생각하며 목메는 날이 자꾸 늘어납니다.

 

피자 한 조각을 맛있게 드신 어머니 볼에 입을 맞추고

사진 속 아버지께 인사 여쭙고 돌아왔습니다.

 

크리스마스 날은 아직 세 시간이나 남았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축원하기에

충분한 시간입니다.

 

부디 잘 사시라...

그대와의 사별이 온 세상 사람들의 눈을 말갛게 씻어주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