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스토크 사건과 전문가의 힘 (2022년 1월 29일)

divicom 2022. 1. 29. 12:30

정초에 손님이 사들고 온 꽃 덕에 한 3주 집안이 환했습니다.

아름다움에 반해 이름도 묻지 않고 받아들고는 시든 후의 아름다움까지 만끽했습니다.

홀로 남은 화병이 안쓰러워 꽃집에 갔습니다.

 

동네의 꽃집들 중 가장 나중에 생긴 듯한 집으로 갔는데

손님으로 보이는 사람과 대화 중이던 주인에겐 저와 동행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어서 오세요.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라고 했으면 기다렸을 텐데

아무 말 없이 하던 말만 하기에 잠시 꽃을 구경하다 나왔습니다.  

 

산책 삼아 100미터쯤 걷다가 다른 꽃집에 들어갔습니다.

그 집에서도 주인인 듯한 사람은 누군가와 대화 중이었지만 조금 전에 보았던 주인과는

아주 달랐습니다. 금세 정말 우리를 반기는 듯한 "어서 오세요"를 들었습니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꽃을 보는 순간 다른 꽃에겐 눈이 가지 않았습니다.

'스토크 (stock flowers)'라고 했습니다. 그 아름다운 꽃의 이름이 왜

'재고, 육수, 주식' 따위를 뜻하는 'stock'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스토크 두 대를 사서  드니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주인은 꽃에 물이 공급되도록 포장해 주겠다고 했지만

바로 집에 가서 꽂을 테니 필요없다고, 포장지는 환경 오염원이라고 거부했습니다.

 

보라색 스토크를 들고 득의만면하여 집으로 가는데 전날 들렀던 안경점에서 렌즈가

준비됐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집과는 반대 방향이지만 잠시 들렀다 가면 될 것 같았습니다.

지금 쓰는 안경은 2년 전에 한 것인데 그때보다 눈이 더 나빠졌다고 했습니다.

테는 그대로 쓰고 렌즈만 바꾸기로 했습니다. 3,40분의 기다림도 스토크 덕분에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도수를 높인 안경을 끼고 집으로 돌아가 스토크를 화병에 꽂았습니다.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에 보니 꽃들은 모두 시들고 꽃이 달린 줄기들은 고개 숙인

사람들 꼴이었습니다. 전날 밤 일이 떠올랐습니다. 잘 굽지도 않던 고기를

전날 저녁에 구운 것입니다. 고기 냄새가 싫었던 걸까, 이산화탄소 때문일까,

햇살이 필요한 걸까...

 

고민을 거듭하다 꽃집에 전화를 했습니다. 주인은 고기 구운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며 

꽃들이 물을 빨아올리지 못하는 것이니 대의 끝을 사선으로 자른 후 끓는 물에 잠깐 담갔다가 화병에 꽂으라고 친절히 알려주었습니다. 가르쳐 주는 대로 하고 보니 꽃들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좀 더 시간이 흐르자 시들어 오무라졌던 꽃들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래 사진 참조)

 

기품 있는 스토크를 보고 향내를 맡을 때면 언제나 저의 무지가 부끄럽고,

꽃집 주인의 전문가다운 지도에 감사하게 됩니다.

동네엔 꽃집이 여럿이지만 이제부터는 '홍이꽃집'만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