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애인은 책을 별로 읽지 않았습니다.
저는 책 읽기를 좋아했습니다.
책 읽기처럼 재미있는 일을 즐기지 않는 게 궁금해
어느 날 그에게 왜 책을 읽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가 반문했습니다. 왜 그리 책을 읽느냐고.
재미있어서 읽는다고 하니 그는 자신은 책 말고도
재미있는 게 많다며, '책은 한 권만 제대로 읽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 책이 어떤 책이냐 물으니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라고
했습니다. 불교 신자도 아닌 사람이 <싯다르타>라니...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그가 자신의 문고판을 빌려주어
저도 그 책을 읽었지만, 왜 그 책 하나만 제대로 읽으면 된다는 건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한 십년쯤 후 다시 그 책을 읽는데 참 좋았습니다.
왜 그 책 한 권만 제대로 읽으면 된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아니, 꼭 그 책이 아니어도,
한 권만 제대로 읽으면 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책이 재미있고 책읽기를 좋아하지만,
책 읽는 사람이 읽지 않는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거나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압니다.
죽어라 책을 읽는 사람들 중엔 지식 자랑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지식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식으로 먹고 사는 것은 몸이나 기술로 먹고 사는 것과 다르지 않지만
지식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 중엔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게다가 자신이 가진 지식과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사람 또한 많으니 우습습니다.
아는 것을 일상을 통해 실천하지 않는다면 모르는 것과 같으니까요.
어제 제가 '응급실'이라고 부르는 카페 에스페란자 로우스터스에서
바로 그런 지식을 경계하는 문장을 만났습니다.
"사랑 없는 지식은 사람을 파괴한다." (p. 152, <크리슈나무르티>, 고요아침)
지금 우리의 주변엔 '사랑 없는 지식'을 설파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그 사람들로 인해 세상이 날로 시끄러우니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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