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노년일기 92: 검버섯 (2021년 10월 27일)

divicom 2021. 10. 27. 09:15

엊그제 텔레비전에서 제 또래 여인을 보았습니다.

화장도 하고 염색도 해서 썩 늙어 보이진 않았습니다.

 

"검버섯이 자꾸 생겨요. 손에도 생기고 팔에도 생기고

얼굴에도 생겨요. 검버섯을 볼 때마다, 아 나도 이젠

늙었구나, 끝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슬퍼져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이가 안 되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웃음이 나왔습니다. 큰 걱정이 없는 사람일 테니까요.

 

저도 검버섯이라면 제법 많이 갖고 있습니다.

그이와 비슷하게 손등에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팔, 얼굴, 콧등에도 생겼습니다.

옷으로 가려지는 부분에도 꽤 있고,

생기려는 징후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제가 관찰한 바로는, 검버섯은 아주 작고 옅은,

분홍과 자주 사이의 어떤 빛깔 점으로 태어나

점점 짙어져 다양한 농도의 갈색으로 자리잡습니다.

 

저는 검버섯을 주름이나 백발 같은 것으로 생각하니

슬프다기보다는 흥미롭습니다. 

과학 지식이 적어 확신할 순 없지만

햇살이 앉았던 자리에 남은 흔적이 아닐까 합니다.

 

젊은 시절 기자로 일할 때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거나

양산을 받지 않고 햇볕 속을 걸어다닌 일이 많으니

'이 검버섯은 데모 취재할 때 시작됐을 거야' 하는 식으로

생각합니다. 모든 일은 흔적을 남기니까요.

 

주름도 백발도 검버섯도 다 마음 바깥의 일,

벗어 버릴 옷 같은 일이라 생각해

크게 마음 쓰진 않습니다.

 

지금 저를 슬프게 하는 건 검버섯이 아니고

가깝고 먼 사람들의 아픔입니다.

'아픔을 나누면 절반이 된다'는 말이 허사라는 걸

아파 본 사람은 누구나 압니다.

 

천지신명이시여,

덜 아픈 자들에게 검버섯을 더 주셔도 좋으니

아픈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