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동생은 셋이지만 오빠는 하나뿐입니다.
아들이 대접받고 종손은 더 대접받던 시절
종손으로 태어난 오빠는 부모님의 극진한 정성 속에
자랐습니다.
그림을 잘 그려 지도를 보고 그린 지도는
원화를 능가했고, 삼국지의 본문 밖 여백에
그려넣은 만화는 본문보다 재미있어
동생들의 인기를 끌었습니다.
음악을 두루 좋아하고 노래도 잘했습니다.
<학생365곡집>이라는 노래책을 펼쳐놓고
바로 아래 동생인 저와 노래를 부르면
오빠는 늘 화음을 담당했는데, 처음 부르는
노래에도 화음을 참 잘 넣었습니다.
마음속으론 미술이나 음악을 전공하고 싶었을지
모르지만, 오빠는 아버지가 권하시는 대로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습니다. 팝송 모임에 나가고
월간 <팝송>에 칼럼을 연재하여 아버지의 꾸지람을
듣기도 했지만, 결국 박사학위를 가진 학자가
되었습니다.
오빠의 마음이 어떻든 오빠는 반듯한 장손이었습니다.
현숙한 아내와 결혼하여 두 아들을 낳아 부모님을
기쁘게 하고, 동생들에겐 늘 너그러웠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조금 자유로워진 듯 보이던
오빠가 언제부턴가 가끔 아픕니다. 아파서 그런지
갱년기라서 그런지 전에 없이 화를 내기도 합니다.
칠십을 앞두고 돌아본 자신의 삶에서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일들을 다시 만났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혹시라도 오빠가 ‘장손의 길’을 가느라 포기한 것들을
생각하며 마음 아파한다면, 저의 길이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귀한’ 두 아들 사이에 낀
‘기집애’의 어린 시절과, 지금껏 차별의 상처를 극복하려
애쓰고 있는 늙은 여동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