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기사나 방송 뉴스를 꼼꼼히 보지 않다 보니 가끔 '중요한' 뉴스를 놓칠 때가 있습니다.
남들은 다 아는 걸 혼자만 모르고 있다가 친구나 다른 사람 덕에 뒤늦게 알게 되면 매우 부끄럽고,
내가 이렇게 놓친 사건이 얼마나 많을까 탄식하게 됩니다.
오늘도 경향신문 '김민아 칼럼'을 읽고서야 서지현 검사를 성추행했던 안태근 전 검사장에 대한 판결이
대법원에서 뒤집혀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내진 것을 알았습니다.
김민아 선임기자는 대법원이 '시대의 기후'를 읽지 못한 판결을 했다고 꾸짖지만
저는 대법원이 '대병원'이 되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초고도근시인 저보다 나쁜 시력과 좁은 시야를 가진 사람들이 그럴싸한 가운을 입고 앉아
법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법치(法痴)'의 현장이 된 것은 아닐까요?
이 중요한 문제를 환기시켜준 김민아 선임기자에게 감사합니다.
김민아 칼럼]‘안태근 무죄’, 시대의 기후 읽지 못한 대법원
지난 9일 대법원은 안태근 전 검사장에게 유죄를 선고한 항소심 판결을 무죄 취지로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 서지현 검사가 2018년 1월 안 전 검사장의 성추행과 인사 보복 의혹을 폭로한 지 2년 만에 나온 판단이다.
‘법관은 판결문으로 말한다’고 했다. 대법원 제2부(주심 노정희, 재판장 박상옥, 관여 대법관 안철상·김상환)의 판결문을 읽어봤다. 놀랍게도 ‘성추행’ ‘강제추행’ ‘성폭력’ ‘성범죄’ 같은 단어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의 본격 시발점이 된 이 사건에 대해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법무부 검찰국장이던 안 전 검사장이 서 검사를 성추행한 사실을 덮기 위해 인사 보복을 했다는 게 핵심이다. 검찰은 성추행 혐의가 사실이라고 인정했으나 공소시효가 지나 기소하지 못했다. 대신 부하 신모 검사로 하여금 비정상적 인사안을 만들도록 한 혐의(직권남용)로 안 전 검사장을 재판에 넘겼다. 2015년 8월 여주지청에 근무하던 서지현 검사를 통영지청으로 발령한 것이 경력검사를 연속해 부치지청(차장검사가 없고 부장검사를 둔 소규모 지청)에 보내지 않는 ‘경력검사 부치지청 배치제도’에 어긋난다는 게 검찰 주장이다. 1심 판결문은 이 제도가 도입된 2000년 이래 서 검사 외에는 부치지청에서 경력검사로 일하다 다음 인사에서 다시 부치지청으로 배치된 사례가 없었다고 밝혔다.
1·2심 재판부는 모두 공소사실의 전제인 성추행을 인정하고, 인사보복이 있었다고 판단해 징역 2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판결문은 범죄 동기에 대해 “서지현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줌으로써 자신의 강제추행 사실을 은폐하려는 것”이라고 적시했다.
대법원은 달랐다. 검사 인사에 광범위한 재량이 인정되며, 경력검사 부치지청 배치제도는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고 봤다. 따라서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 상고이유에 대해선 판단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사실관계를 다투는 ‘사실심’이 아닌, 하급심의 법리 오류를 따지는 ‘법률심’을 맡고 있다. 그러나 법률심의 의미가 공소사실을 둘러싼 모든 맥락을 무시하라는 뜻은 아닐 터다. 서 검사가 인사 불이익을 당했다고 주장한 것은 ‘미투’의 일환이었다. 인사 보복 여부를 살피려면 성추행이란 맥락도 고려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를 외면한 채 기계적으로 판단했다. 대법원 판결문에서 서지현이란 이름만 지우고 나면, 인사권자와 어떤 이해관계도 없는 검사가 오로지 지청에서 지청으로 가게 된 데 불만을 품고 문제를 제기한 듯 비친다. 그렇지 않다는 건 온 나라가 안다.
350여개 여성·노동·시민사회단체가 모인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지난 13일 대법원 앞에서 이번 판결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 발언이 정곡을 찌른다. “재량이란 것이 온전히 홀로 존재할 수 있는 겁니까? 재량에 영향을 미치는 건 무엇입니까? 대법원은 재량을 말하기 전에 재량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두루 살펴봤어야 합니다.”
남녀고용평등법 14조의 2는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인사상 불이익 조치를 금지하고 있다. 대법원 판결처럼 인사조치에 ‘광범위한 재량’을 인정한다면 이 조항은 사문화하고 말 것이다. 직장 내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는 상급자, 피해자는 하급자인 경우가 다수다. 사용자 입장에선 강자를 엄단하기보다 약자를 험지나 기피 부서로 보내는 일이 간편하지 않겠는가. 대법원은 사용자들에게 매우 나쁜 신호를 보내고 있다.
미국의 진보적 여성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말했다. “판사는 그날의 날씨가 아닌, 시대의 기후를 고려해야 한다.”(<긴즈버그의 말>) 그날의 날씨란 법리와 판례에 갇힌 ‘좁은 사법’, 시대의 기후란 맥락과 흐름을 반영한 ‘넓은 사법’을 뜻할 터다. 한국 최초의 여성 대법관인 김영란 전 대법관의 인식도 다르지 않다. “생각과 상상을 그치고 주어진 법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은 인공지능이 계산된 알고리즘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판결과 정의>)
역사적·사회적 맥락이 소거된 사법은 사법이 아니다. 진실 발견과 정의 실현을 방해하는 도구일 뿐이다. 당장 대법원 판결 이후를 보라. 가해자는 구치소를 떠나 집으로 돌아갔다. 피해자는 직장에 복귀하지 못한 채 질병휴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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