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목전에서 병원 덕에 살아나온 사람에게 병원은 고마운 곳이지만,
죽지 않을 정도의 병에 걸린 사람에게 병원은 종종 불쾌한 곳입니다.
대학병원에선 의사의 얼굴을 한 번 보기 위해 무수하게 많은 다른 이들의
얼굴과 만나야 하고, 작은 병원에서도 꽤 긴 예비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의사를 만나 진단을 받고 환자복을 입고 치료를 받기 시작하면, 사람은
남자도 여자도 아니고, 산 사람도 아니고 죽은 사람도 아닌 '병의 나라'의
주민이 됩니다. 의료인들이 이 주민들로부터 제일 먼저 빼앗아가는 건
자존심과 프라이버시(사생활)입니다. 말을 친절하게 하는 간호사조차
환자를 '사람'으로 보는 이는 드뭅니다.
이러니 자존심과 프라이버시에 예민한 사람들은 병원에서 병을 고치는 동안
새로운 상처를 무수히 받게 되고, 나올 때는 몸 관리를 잘해서 다시는 병원에
오지 않으리라 다짐을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살아가는 일은 생로병사의 과정,
병 없는 삶이 없으니 사람은 또 환자가 되고 환자는 또 사람이 됩니다.
의사와 간호사가 환자가 되어보면 분명 더 나은 의사와 간호사가 될 겁니다.
물론 자기가 아는 의료인들이 자신을 계속 사람 대우해주는 병원은 피해야겠지요.
병이 나지 않는 의사나 간호사는 윌리엄 허트가 주연했던 영화 'The Doctor'를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단지 흰 가운을 벗고 환자복을 입었을 때 자신을 대하는
타인의 시선과 대우가 얼마나 달라지는지 알게 해주는 명작이니까요.
자, 이제 그만 일어나야겠습니다. 병원에 가야 하거든요. 병을 치료해주며 여러 가지
생각까지 하게 해주는 공간, 그래도 병원은 있어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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