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이상한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 반드시 그보다 더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이 세상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늘어납니다.
지난 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남북한 축구 경기도 참 희한했습니다.
텅 빈 관중석, 취재 기자도 없고 중계방송도 없고, 오직 승리를 위한 몸싸움만 격렬한 경기...
남북한이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는 일이 더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여적]기괴한 축구
“텅 빈 관중석 앞에서 열린 기이한 경기(미국 워싱턴포스트)”, ‘가장 비밀스러운 월드컵 예선 경기’로 “중계방송도, 팬도, 외신도, 그리고 골도 없었다(영국 데일리메일)”, ‘기괴한 경기’였으며 “경기 결과는 부차적이었다”(독일 축구 전문지 키커). 지난 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북한의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H조 3차전에 대한 외신들의 표현이다. 29년 만의 축구대표팀 평양 원정 경기가 평창 동계올림픽 때처럼 남북 평화의 물꼬를 틀기를 기대한 것과 너무나 딴판이다.
남측 중계진의 방북을 불허할 때부터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이날 평양 경기 장면은 상상 이상으로 썰렁했다. 경기 전날 4만명 관중이 구경할 것이라는 북한 측의 귀띔도 지켜지지 않았다. 상대팀을 안방으로 불러들여 무중계·무관중 경기를 하면서 일방적으로 자기팀만 응원하기가 멋쩍었던 것일까? 요아킴 베리스트룀 북한 주재 스웨덴 대사가 몇 마디 육성과 함께 트위터로 전한, 남북 선수들이 승강이하는 모습은 차라리 정겹게 느껴졌다.
운동 경기는 원래 몰래 하는 법이 없다. 관중은 경기의 흥미를 더 하는 필수 요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북한에는 무관중 경기가 낯설지 않다. 2005년 3월 김일성경기장에서 월드컵 최종예선 이란과의 경기 중 북한 선수가 퇴장당하자 관중이 항의하며 이란 선수들을 위협했다. 이로 북한은 ‘무관중 경기’ 징계를 받아 홈에서 할 예정이던 일본과의 경기를 제3국인 방콕에서 치렀다.
축구 경기 열기가 갈수록 뜨겁다. 월드컵이나 유럽축구선수권대회 등 국가대항전은 가히 전쟁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축구에 평화의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평양 경기가 열린 15일 사우디아라비아 국가대표팀은 요르단강 서안 알람에서 팔레스타인과 원정경기를 치렀다. 사우디가 이곳에서 경기를 한 것은 처음이다. 사우디를 비롯한 아랍국가들은 그동안 이스라엘의 허가를 받는 것을 기피해 팔레스타인과 제3국에서 경기를 치러왔다. 전날 사우디는 이스라엘의 수도인 동예루살렘도 방문했다. 아랍국가들의 대이스라엘 정책이 변하고 있다는 증좌이다. 시계를 거꾸로 돌린 ‘평양 무관중’ 축구가 더욱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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