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팔년 전일 겁니다.
경기도 출신으로 서울의 대학에 다니는 친구들을
아름다운서당의 영리더스 아카데미(YLA)에서 만났습니다.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학생들은 몇 개의 조로 나뉘어
인문학과 경영학 수업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업이 시작되기 직전 경기도 당국이 못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프로그램은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당시 학생들은 제가 함께 공부했던 어떤 그룹의 학생들보다
열의에 차 있었고, 그런만큼 실망도 큰 것 같았습니다.
제 조에 속한 친구들에게 제안했습니다.
YLA는 못하게 되었지만 우리는 함께 만나
함께 읽고 생각하고 얘기를 나누자고.
학생들은 모두 좋다고 했습니다.
모임의 이름도 '해나리'라고 지었습니다.
'지금은 안개 속을 헤매는 것 같지만 언젠간 해가 나리라, 혹은
해가 나기를!' 하는 기도를 담은 이름이었습니다.
사는 곳도 다르고 학교도 다르고 전공도 달라
자주 만날 수는 없었지만 가끔 만나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학생들이 졸업하고 취업 준비에 들어가면서
'해나리'는 자연스럽게 그들과 저의 일상에서 사라졌습니다.
멤버 중 누군가가 취직을 했다고 연락하면
기쁨을 함께 나누고 그의 앞날을 축원하긴 했지만요.
그러다 어제, '해나리' 멤버 네 사람을 만났습니다.
인사동의 고급 한정식집 두레에 예약을 해두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가기 전에 위치 확인 차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밥값이 꽤 비쌌습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맛있는 밥을 사줘야지 기쁜 마음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구슬이, 나종균, 이재균, 조수연...
네 사람 모두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인이 되어 있었지만
별로 변한 게 없었습니다.
그새 연락도 않고 결혼한 슬이씨와 종균씨는 다른 이들의
지탄(?)을 받았습니다.
맛있는 밥을 먹고 차와 후식을 먹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습니다.
다시 만나자며 숙제까지 나눠갖고 헤어졌습니다.
근무 강도도 높고 출장도 잦은 친구들이라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알 수는 없지만,
어젠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그 친구들이 저를 기억해 만나주고
귀한 시간을 함께 해주는 것만도 고마운데
밥도 차도 모두 자신들이 부담했습니다.
저는 기억하지 못하는 옛일을 얘기하며
이제부터는 자신들이 사겠노라고 큰소리를 쳤습니다.
어제 친구들과 헤어져 돌아오며
다시 한 번 제가 얼마나 복 많은 사람인가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누군가로 인해 서운한 마음이 들어도
'해나리' 친구들에게 받은 사랑을 상기하며
기쁜 마음으로 살아야겠습니다.
'해나리' 친구들, 고맙습니다.
살 만할 때는 열심히 살다가
살기 힘들 때 연락하세요!
연락이 안 되어 오지 못한 수진씨도
언젠가 꼭 만나고 싶습니다.
'해나리'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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