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엔 다니지 않지만 예수님은 존경합니다.
예수님은 모두를 사랑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으세요!'하고 외치면서 남을 헐뜯고
자신의 잣대로 남을 재단하는 사람들을 보면
'예수님이 얼마나 속상하실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랜만에 크리스마스날 시내에 나갔습니다.
날이 흐린 탓인지 종로와 청계천 두루 침침했습니다.
청계천변 헌책방이 십여 개 남았다는 말을 듣고
그곳엘 갔습니다.
1975년부터 서점을 운영해오신 함양서림 박 사장님과의 대화는
즐거웠습니다. 사장님은 고 이병주 선생의 <관부연락선>을
읽고 계셨습니다.
고등학생, 대학생 시절 우울할 때마다 가던 헌책방길...
아마 그때 적어도 한 번은 박 사장님을 만났겠지요.
짧지만 즐거운 담소 후에 <백년 동안의 고독>을 비롯해
책 세 권을 사고 다른 서점으로 갔습니다.
그 서점의 사장은 박 사장님과는 너무나 다른, 그냥 장사꾼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책값도 너무 높게 불러 살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한 번 책이라는 물건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돈을 받고 물건을 파는 건 마찬가지지만
책 파는 사람은 고기나 옷을 파는 사람과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저뿐일까요?
책을 산 후엔 광장시장으로 갔습니다.
서울 사람이 다 광장시장으로 온 듯
걷기 힘들 정도로 사람이 많았습니다.
부침개, 칼국수, 만두, 비빔밥...
시장 길 가게들마다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저도 꽤 기다린 후에 이것저것을 먹었습니다.
배가 부르니 추운 줄도 몰랐습니다.
광장시장에서 광화문까지 걸어서
버스를 타고 귀가했습니다.
<백년 동안의 고독>을 책꽂이에 꽂으려니
똑같은 책이 이미 꽂혀 있었습니다.
돈도 없으면서 왜 이 책을 또 사온 걸까요?
번역자가 안정효 선배라서일까요?
소식 들은 지 오래되었지만 그분은
제가 코리아타임스 기자 시절 문화부장님이었습니다.
어쩌면 전에 아름다운서당의 영리더스아카데미에서
학생들과 고전 공부를 할 때, 이 책을 구하지 못해
고생했던 적이 있어 이 책만 보면 사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고독'이라는 말에 이끌렸을 수도 있겠지요.
아무튼 저는 청계천 헌 책방 덕에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냈지만
세상은 여전히 침침하고 웃는 얼굴은 드물었습니다.
저 혼자 크리스마스를 즐겁게 보낸 것 같아
미안했습니다.
언제쯤이면 미안함을 느끼지 않고
크리스마스를 즐겁게 보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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