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싸움을 혐오하지만 어린 시절 텔레비전으로 프로레슬링을 보는 건 좋았습니다.
일종의 '권선징악'의 현장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철천지 원수'인데 그 일본의 이노키 선수를 우리 김일 선수가 박치기 한 방으로 거꾸러뜨리면
함께 보던 사람들 모두 박수를 쳤습니다.
김일 선수의 뒤를 이은 이왕표 선수는 사양길에 접어든 프로레슬링에 한 줄기 빛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가 날아서 두 발 차기를 하는 모습은 힘차고 아름다웠습니다.
그 이왕표 선수가 어제 별세했습니다.
텔레비전 방송마다 그의 모습이 보입니다.
또 한 사람, 품격 있는 동행이 떠나갑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
아래는 중앙일보의 관련 기사입니다.
이낙연 총리, 이왕표 별세 소식에 “꿈을 줘 감사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한국 프로레슬링의 대부 이왕표 한국프로레슬링연맹 대표의 별세 소식에 애도의 뜻을 표했다.
이 총리는 4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프로레슬러 이왕표님 별세. 그동안 꿈을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명복을 빕니다”라고 애도를 표했다. 이어 “역도산, 김일, 그리고 이왕표님까지… 또 한 시대가 갑니다”라고 덧붙였다.
[출처: 중앙일보] 이낙연 총리, 이왕표 별세 소식에 “꿈을 줘 감사했다”
1954년 충남 천안에서 태어난 이왕표는 1975년 ‘박치기왕’ 김일 체육관 1기생으로 입문해 프로레슬러로 데뷔했다. 키 1m90㎝, 몸무게 120㎏의 거구에도 날렵한 몸놀림을 자랑했다. 김일의 또다른 제자 역발산과 함께 한국 프로레슬링을 이끈 이왕표의 장기는 ‘플라잉 드롭킥(뛰어올라 두 발을 모아 상대방을 공격하는 기술)’이었다.
세계레슬링연맹(GWF), 세계프로레슬링기구(WWA) 헤비급 챔피언에 올랐고, 세계적인 인기 레슬러 헐크 호건과 싸우기도 했다. 2008년에는 울트라 FC라는 종합격투기(MMA) 단체를 만들어 격투기 선수 밥 샙과 싸워 암바로 승리를 거뒀다.
50대에도 꾸준히 링 위에 섰던 그는 2013년 담도암 판정을 받았다. ‘사망시 모든 장기를 기증하기로 한다’는 유서를 작성하고 수술을 받은 뒤 기적적으로 병마를 이겨냈다. 하지만 암이 재발하면서 세 차례나 항암치료를 받았고, 결국 4일 오전 별세했다. 64세.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은 8일이다. 장지는 일산 창하공원이다.
한영혜 기자 han.younghye@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이낙연 총리, 이왕표 별세 소식에 “꿈을 줘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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