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바이올리니스트 양주영(2018년 9월 2일)

divicom 2018. 9. 2. 08:20

열흘 후면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3년이 됩니다.

높고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을 보고 있으면 어디선가 

하늘처럼 선명한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바이올린을 좋아하셨습니다. 저도 바이올린을 좋아합니다.


그의 연주회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지만 저는 바이올리니스트 양주영 씨를 좋아합니다.

그는 지금 한국인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독일의 세계적 오케스트라인 

밤베르크교향악단(Bamberg Symphony Orchestra)의 종신 단원이지만, 

제가 그를 만났을 때는 중학생이었습니다.


당시 예원학교 3학년이던 주영씨네가 평창동의 오래된 빌라로 이사온 건 

그 동네에 있는 서울예고에 진학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빌라의 3층엔 307호와 308호 두 집뿐이었고, 

저는 308호에 오래 사시다 병환으로 인해 이사가신 

이근삼 선생님과 홍인숙 사모님을 그리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 어느 날 복도에서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바이올린 소리를 들었습니다.

같은 부분을 반복해 연주하는 것을 들으니 연습 중인데, 

대단히 성숙한, 음악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의 연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308호에서 들려오는 바이올린 소리를 듣는 것이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어느 날 복도에서 주영씨의 어머니 박윤주 씨를 만났습니다.

윤주씨는 콩쿠르를 앞두고 연습을 많이해서 시끄러웠다며 사과했지만 

저는 음악성이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의 이웃이 되어 기쁘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주영씨네와 우리 집은 허물없이 오가는 사이가 되었고

제 귀는 주영씨의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며 내내 행복했습니다.

'한국의 연주자들은 기교는 뛰어난데 음악성이 부족하다'는 평이 흔했지만

주영씨에겐 해당되지 않는 얘기였습니다.


주영씨는 서울예고에 합격했고 그 학교를 졸업하고는 독일로 갔습니다.

저희도 주영씨네도 모두 평창동을 떠났지만 우리의 우정은 여전하고

주영씨는 독일에서 연주가로 승승장구해 마침내 밤베르크교향악단의 종신 단원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유명한 교향악단의 수습단원만 되어도 국내 언론에 요란하게 홍보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주영씨는 그냥 조용히 바쁘게, 오래된 교향악단의 젊은 연주가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주영씨처럼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의 성장을 지켜보는 행운을 누렸으니

저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기회가 되면 언젠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도 주영씨의 바이올린 소리를

들려 드리고 싶습니다.


주영씨, 윤주씨, 

감사하며,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