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미국에 태어나라! (2010년 7월 7일)

divicom 2010. 7. 7. 07:49

저를 아는 사람들이 이 글의 제목을 보면 깜짝 놀랄 겁니다.

제가 미국대사관에 근무한 적은 있어도 미국을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걸

알 테니까요. 특히 소련의 해체 후 미국 외교를 특징지어온,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서의 미국의 거만이 늘 거슬렸습니다.

 

하지만 미국엔 배울 점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미국 사회를 정의하는 '법에 의한 지배(rule of law)'와

거의 모든 분야에 조직적으로 배어 있는 합리주의가 부럽습니다.

 

'미국에 태어나라'는 선정적 제목 앞엔 '태어나지 마라,

특히 한국엔 태어나지 마라. 꼭 태어나야 한다면'이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요즘 거리에서 어린 아기들을 보면 예쁘다는 생각보다

가엾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이 척박한 땅에서 어찌들 살아갈꼬...

갈수록 낮아지는 출산율 때문에 큰일 났다며 각종 편의주의적 조처들을

취하면서, 정작 태어난 아이들은 홀대하는 나라, 어린이들이 제 집안에서조차

성폭행을 당하는 나라, 런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도 사죄할 줄 모르는 정부.

사건은 금세 잊히고 피해자와 가족만이 모든 고통을 떠맡는 나라...

 

엊그제 신문엔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회가 성폭행 피해자에게 배상금을

지급하기 위해 법안을 통과시켰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1991년, 당시 열한 살이던 제이시 두가드는 가석방된 성폭행범에게

납치되어 감금된 상태에서 두 딸까지 낳았습니다. 캘리포니아 주의회는

주 정부가 가석방 관리를 잘못한 책임을 인정하여, 2천 만 달러

(한화 약 245억 4천 만 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는 법안을 만장일치 (62대 0)로

통과시켰습니다. 캘리포니아 주 정부는 현재 심각한 재정적자로 골치를 앓고 있지만,

주지사가 이 법안에 서명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두가드와 그녀의 딸들은 오랫동안 정신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김길태 사건을 비롯해 무수한 사례가 보여주듯,

이 나라의 성범죄는 주로 불우한 환경으로 인해 왜곡된 인성을 갖게된 사람들이 저지르는,

다분히 사회적인 범죄입니다. 그런데도 이 나라는 이 범죄를 '짐승만도 못한'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고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태어나라'고 하는 건, 미국 시민권을 얻어

한국에서 징집되는 걸 피하라거나, 공부가 전부가 아닌 곳에서

잠재력을 계발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곳이 이곳보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열 살도 안된 아이들이 성폭행을 당할 가능성이 이곳보다는 낮다는 뜻입니다.

 

아가들아, 부디 태어나지 말거라, 특히 이 나라에는.

이 나라는 너희들을 가질 자격이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