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문단 내 성폭력과 '괴물'들(2018년 2월 9일)

divicom 2018. 2. 9. 10:12

'글을 보면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하지만, 모든 글이 글 쓴 이를 보여주는 건 아닙니다.

글이 사람만 못할 때도 있고 글이 사람보다 나을 때도 있습니다.

저명도도 글과 같아서, 직접 겪어보면 현편 없는 저명인사도 있고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뛰어난 사람들도 있습니다.


요즘 이 나라 각 분야에서 터져나오는 성폭력 사건을 보면

남자의 '적(敵)'은 '성적 욕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성욕이 '눈 먼 말'이 되지 않게 스스로 통제하는 것이 사람의 길이지만

이 사회에는 그 길을 포기하고 '성性'의 노예로 사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성폭력을 저지른 사람으로 지목당하는 인사들 중에

노벨문학상 후보로 오르내린 '원로 시인'도 있다고 하니 기가 막힙니다.

그 원로 시인이 고은 시인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래는 어제 경향신문에 실린 박구재 논설위원의 글입니다.



[여적]문단과 괴물

박구재 논설위원

소설가 김명순(1896~1951)은 1917년 단편 ‘의심의 소녀’를 발표하며 등단한 한국 최초의 여성 작가다. 1920년대 문예지 ‘창조’의 동인으로 활동했던 김명순은 문학적 재능이 탁월했던 작가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김동인·전영택·김기진 등 당대의 유명 남성 작가들에 의해 ‘퇴폐 여성’으로 낙인찍히며 문단에서 사장됐다. 김명순은 소설 <탄실이와 주영이>를 통해 일본 유학 시절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폭로했다. 그러자 김기진은 김명순에게 “성격이 이상하고 행실이 방탕하기 때문”이라며 인격살해를 가했고, 전영택은 “탕녀”라는 극언을 퍼부었다. 당시 김명순에게 남성 작가들은 ‘문단 내 괴물’과도 같은 존재였다.

여성혐오와 성차별은 한국 문단의 뿌리깊은 병폐다. 여성 작가에 대한 성폭력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6년 10월 해시태그 운동 ‘#문단_내_성폭력’은 문화예술계를 뒤흔들어 놓았다. 당시 문단 내 성폭력 피해자들이 모인 트위터 계정 ‘고발자5’의 폭로는 충격적이었다. ‘고발자5’는 고교 문예창작 실기교사였던 배용제 시인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제자에게 몹쓸 짓을 저지른 배 시인은 “네가 문학에서 벽을 마주하는 이유는 틀을 깨지 못해서 그렇다. 탈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고발자5’의 폭로가 있은 뒤 ‘#문단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은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번지며 성폭력이 만연한 한국 문단의 추악한 실태를 고발했다.

최영미 시인이 ‘황해문화’ 2017년 겨울호에 발표한 시 ‘괴물’이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확산되면서 ‘문단 내 성폭력’ 고발운동이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 시인은 시 ‘괴물’에서 원로시인의 성추행을 폭로한 데 이어 6일 JTBC에 출연해 “(시에 언급된) 그는 상습범이다. 너무나 많은 성추행과 성희롱을 목격했고, 피해자가 셀 수도 없이 많다”고 밝혔다. 시 ‘괴물’에서 ‘En’으로 표기된 이름과 노벨문학상을 뜻하는 ‘노털상’으로 인해 가해자로 지목된 원로시인은 “잘못된 행동이라 생각하고 뉘우친다”고 했다. 한국 문단에는 아직도 성폭력을 일삼는 ‘괴물’들이 적지 않다. 최 시인이 시에서 언급한 대로 문학이란 이름을 더럽히는 ‘괴물을 잡아야’ 할 때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2072059025&code=990201#csidx6f77f58b4c2fea3ab5f5cd237265e7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