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기무사의 손씻기(2018년 1월 27일)

divicom 2018. 1. 27. 09:52

엊그제 텔레비전 저녁 뉴스를 보다가 온가족이 파안대소를 하고 말았습니다. 

영하 십 몇 도의 추위 속에서 정복을 입은 국군기무사령부 장성들이 손을 씻고 있었으니까요. 

뉴스가 이렇게 재미있으니 코미디를 안 보는 거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기무사가 본연의 의무는 망각한 채 정치에 개입했던 것을 반성하는 것은 다행이지만,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겠다며 진짜로 손을 씻는 장면을 보고 있으니, 

평생 남의 지갑 훔치던 소매치기가 손을 씻는 장면을 보는 듯했습니다. 

소매치기가 손을 씻는 건 소매치기를 그만두는 것이지

만인이 보는 앞에서 대야에 담긴 물에 손을 씻는 것은 아니겠지요.


'은유'를 은유로 이해하지 못하는 장군들... 참 점입가경입니다.

아래는 오늘 경향신문의 '여적' 칼럼에 실린 이중근 논설위원의 글입니다.


기무사의 손씻기

이중근 논설위원

한국 현대사에서 국군기무사령부(구 보안사령부)는 민주주의·인권과 상극의 길을 걸어왔다. 기무사는 이승만 정권 시절 일본군 헌병 오장 출신 김창룡 등의 주도로 간첩을 잡는다며 반민주 행위를 일삼았다. 박정희 이래 군인 대통령 시절에는 더욱 노골적으로 정치에 개입했다. 군내 쿠데타 세력을 감시한다는 명분 아래 군 안팎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다. 전두환 보안사령관 등 신군부를 옹립해 5공 정권을 창출, 중앙정보부의 힘을 능가했다. 그러니 민주화 기운이 무르익으면서 윤석양 이병의 보안사 민간인 사찰 폭로 등 과거 비리와 공작들이 터져나온 것은 필연이었다.

기무사가 지난 25일 국립현충원에서 개최한 행사가 화제가 되고 있다. 이석구 기무사령관과 장성들이 손을 씻으며 ‘세심(洗心)’이라는 이름의 퍼포먼스를 한 것이다. 이 사령관과 600여명의 부대원은 정치중립을 다짐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러나 엄동설한에 비장한 뜻을 강조하려고 현충원이라는 장소를 택한 것이 적절했는지부터가 의문이다. 정치에 개입한 과오를 저질렀으면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 아닌 시민들을 향해 참회했어야 옳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령부가 위치한 청계산의 물에 손을 씻음으로써 간절함을 표현하려 한 것도 작위적으로 비쳤다. 게다가 이런 행사 자체가 이미 구시대적이다. 친필 서약서를 ‘DSC(기무사의 영문 약자) Promise(약속)’로 명명한 것을 두고 진지함이 결여된 이벤트라는 반응도 있다.

기무사는 그동안 이름도 바꾸고 사령부도 청와대 바로 앞(국립현대미술관)에서 청계산으로 옮겨봤지만 정치개입의 악습을 떨치지 못했다. 의식이나 다짐으로 될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권력기관들은 흔히 과오를 저지른 후 뼈를 깎는 노력으로 거듭나겠다고 약속한다. 하도 반성을 많이 해서 더 이상 깎을 뼈가 없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엄동설한에 손을 씻으며 자정 각오를 보여주려고 한 기무사의 고민은 이해한다. 그러나 한국처럼 군 내부 정보를 수집하는 부대 규모가 이렇게 큰 나라가 없다. 기무사는 손씻기 행사 대신 부대를 절반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몸집 줄이기 선언을 했어야 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1262119005&code=990201#csidxecf2644e9a2da389d7412572dc2a6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