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치소 안팎에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두 전직 대통령 박근혜 씨와 이명박 씨에겐
여러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제가 기자 출신이라 그런지 그 중에서도 '소통 거부'가 가장 거슬립니다.
두 사람이 청와대에 머무는 동안 국민은 국정에 대해 그들이 하고 싶은 말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공직(公職)'이 부담스러운 건 그 자리가 수반하는 공적(公的) 삶 때문입니다.
저처럼 사적인 사람이 공직에 나가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제외하면 한국의 전 대통령들은 대개 짜여진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미리 정해진 질문자의 질문에 미리 준비된 답변을 하는 식의 기자회견이었으니
진짜 '기자'회견이라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기자는 국민을 대신해 궁금한 것을 묻는 사람이지만, 대통령이 이미 선택한 질문에
준비된 답변을 했으니 궁금증이 해소되기보다는 궁금증이 남거나 배가되는 일이 잦았습니다.
전직 대통령들 중에서도 이명박 씨와 박근혜 씨의 태도가 문제 되는 건 그들이 청와대에 있었던 시기 이 나라는
그 전의 한국과는 아주 달랐기 때문입니다. 고등교육을 받은 한국인이 크게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인터넷의 확장으로 민주주의적 국가 운용은 '국민과의 소통'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대개의 국민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국외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많이 아는 사람일수록 국내에서 일어나는 시대착오적 일방통행에 의문을 제기하고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에 대한 두 전직 대통령의 대응은 '블랙리스트' 등 다양한 제재를 통한 입막기였습니다.
국민의 각성에 힘입어 청와대의 주인이 된 문재인 대통령은 민주주의적 국가 운용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국민들 중에는 전 시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있고 일방통행식 편의주의에 길들여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목격한 것처럼, 민주주의적 소통은 때로 매우 비싼 값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옳은 길이면 가야 합니다. 정의는 편의나 거짓 평화를 위해 희생되어선 안 되는 것이니까요.
다시는 이명박 같은 사람, 박근혜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나 다른 공직에 올라서는 안 됩니다.
최소한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 공직을 맡아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어제 한국일보의 '지평선' 칼럼에 실린 황상진 논설실장의 글은 의미있습니다.
http://www.hankookilbo.com/v/92c3bcb05fa642689906be2ce3c1ccca
MB스러움
MB는 해외순방을 마치고 돌아오는 기내에서 라디오연설을 녹음할 만큼 일방적 소통 방식을 선호했다. 오죽하면 KBS PD들이 “KBS라디오는 청와대 구내방송이 아니다”는 성명을 냈을까. MB는 상대와 교감하는 상호성보다 자기 생각을 주입하려는 일방성이 도드라졌다.
▦ 그의 일방성은 개발시대 성공신화에 터잡고 있다. 수평보다 수직, 개인보다 우리, 가족보다 국가가 강조되던 시대를 움직인 핵심 체계는 지시와 복종이었다. MB는 그 틀 안에서 치밀함보다 저돌성으로 성공했다. MB가 자신을 실용주의자라 칭한 것은 그 시대를 관통하며 체득한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의식이 치환된 결과다. 그런 MB가 고도의 공공성을 발휘해야 하는 국정을 그 시절 기업 운영하듯 하고, 공직에 사적 이익에 눈먼 이들을 앉힌 결과는 참혹했다.
▦ 돌아보면 MB 시절만큼 권력형 비리가 심각했던 적도 없다. 자문그룹 ‘6인회’와 대선 경선캠프 ‘안국포럼’ 출신 고위직 인사들, 이상득 전 의원 등 친인척, 대통령직인수위ㆍ서울시 출신 등 권력 실세 수십 명이 인사청탁, 세무조사 무마, 저축은행 퇴출 저지, 개발사업 수주 등 온갖 명목으로 돈을 받아 법정에 섰다. MB는 왜 이를 막지 못했을까. 답은 하나, 그 스스로가 결코 떳떳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대선 전부터 MB는 BBK 의혹에 휩싸였다. 측근들 중에도 ‘주군’의 결백 주장이 맞는 건지 헷갈려 하는 사람이 꽤 있었다. 임기 중에는 내곡동 사저 매입 의혹에 직접 휩싸였다. 민간인 불법 사찰, 국정원 댓글 공작이 자행됐고 4대강ㆍ자원외교ㆍ방위사업ㆍ제2롯데월드 의혹으로 나라가 들끓었다. 불안해진 측근들은 제 몫 챙기기에 바빴다. 그럼에도 MB는 “우리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2011년 9월)이라는, 현실과 괴리된 발언으로 모두를 경악하게 했다. 17일 MB스러운 장면이 다시 연출됐다. 달랑 기자 4명만 앉혀놓고 현 정권을 겁박하는 성명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그리곤 국정원 특수활동비 상납에 대해선 입을 닫았다. MB가 위기를 모면할 패다운 패를 쥐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시대착오적 정치보복 프레임 제기로 자신의 부족한 현실 감각만 드러낸 것은 패착이다. 정말 MB스럽다.
황상진 논설실장 apri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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