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여든의 아름다움: 서정선 선생님(2018년 2월 12일)

divicom 2018. 2. 12. 10:56

제 오랜 친구들은 제가 얼마나 움직이기 싫어하는지 잘 압니다. 

백련산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거나 그 그늘 속을 걷는 게 고작이니까요.


그런 제가 지난 금요일엔 기차를 갈아타며 강원도에 다녀왔습니다. 

평창올림픽에 간 건 아니고 어떤 분을 뵙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날, 2018년 2월 9일(음력 2017년 12월 24일), 저를 강촌으로 이끈 것은 어떤 예감이었습니다.

그곳에 가면 꼭 만나야 할 누군가를 만날 것 같았습니다.

'순간에 영원을 본다'는 말도 있지만, 저는 전에도 아주 짧은 순간에 인생의 스승이 되어줄 

두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한 분은 샤츠 박사라는 분으로 지금은 샤츠라는 성만 기억나고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오랫동안 제 갈 길을 비추는 등불 같았습니다.

그 분을 만난 건 제 나이 만 26세 때, 그분이 48세 때였습니다.

신문기자로서 유타대 사회복지대학원 원장이던 그 분을 인터뷰했고

그 분이 인터뷰 말미에 제 나이를 물으신 덕에 지금도 그때 우리의 나이를 기억합니다.


그때 저는 '결국 죽을 건데 그냥 죽으면 되지, 왜 죽을 때까지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젊은이로 매일 죽음을 꿈꾸고 있었는데, 그 분과의 짧은 만남 후엔 

'혹시 내가 48세까지 산다면 나도 저 분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 한 분은 제 나이 48세 때, 제가 미국대사관 문화과 전문위원일 때 만났습니다.

일터의 분위기가 맞지 않아 마음 고생을 하던 어느 날 대사관 행사에서 

글로리아 스타이넘(Gloria Steinem)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당시 68세였습니다. 

그리고 샤츠 박사를 만났던 때와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혹시 내가 68세까지 산다면 나도 저 분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지난 금요일, 예감에 끌려 찾아간 서울시립대 강촌수련원에서 또 한 분의 사표를 만났습니다.

서정선 선생님. 선생님은 지난 세밑에 돌아가신 바깥선생님 (유철준 전 삼정저축은행 부회장)의 

유지를 실행하시느라 그 자리에 오신 참이었습니다. 


그날 선생님은 제가 이사로 있는 아름다운서당에 후원금 삼천만 원을 주셨습니다.

아름다운서당은 갈 곳을 잃은 젊은이와 어른들이 가득한 이 나라에서, 제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다운 사람, 

이 나라, 나아가 이 세계를 바로 세우는 데 기여할 젊은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 애쓰는 사단법인이며, 

사회에 유익한 일을 하고자 하는 일념으로 무보수 강의를 하는 시니어들, 그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고전을 읽고 경영을 배우는 대학생들이 함께 바른 삶을 모색하는 배움터이자 공동체입니다.

서정선 선생님이 주신 큰돈은 이 공부모임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름다운서당: http://www.beautifulseodang.org/)


아름다운서당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서 선생님께 감사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선생님을 뵙는 순간 저는 '내 인생에 드디어 세 번째 사표가 나타나셨구나'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은 어려운 집안의 맏딸로 21세에 결혼해 아우들을 교육시키고 집안을 일으키셨다는데

선생님의 모습 어디에도 고생의 흔적은 없었습니다. 만나뵌 적 없는 유철준 선생님이 아내의 집안을

자신의 집안처럼 생각하실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 선생님은 여든 살이시라는데 여든에 그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면 

누가 여든이 되는 것을 두려워할까요... 혹시 제가 여든 살까지 산다면 저도 선생님 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샤츠 박사, 글로리아 스타이넘, 서정선 선생님... 세 분은 전혀 다른 곳에서 다른 인생을 살고 계시지만

모두 여성이고 팔십 대이며--샤츠 박사가 생존해 계시면-- 자신보다 사회를 생각하고,

사랑과 정의감, 유머가 넘치는 분들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계십니다.

여든의 아름다움, 그 비결을 알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