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대학생의 편지 (2010년 6월 9일)

divicom 2010. 6. 9. 10:49

"지난 1년간, 교수님께서 해주신 모든 말이 너무도 큰 가르침이어서

교수님 수업을 듣고 돌아가는 날이면 늘 버스를 탔어요. 버스를 타면

생각하고 침묵하는 것이 자유로워지거든요. 지하철은 사람들이 마주

보고 있어서 시선이 신경쓰이는데 버스는 앞만 보고 있으니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표정짓고 하는데 자유롭더라구요. 어쨌든 그날은 말이 없어지고

생각이 많아지는 날이었습니다. 특히 저번 주에 해주신 말씀 기억하세요?

제가 과연 운명이 있는 것일까 자유의지가 있는 것일까 여쭤봤었죠.

저에게는 너무 큰 고민이었습니다. 그동안 이루어질 것이라고 간절히 믿고

노력하면 뭐든 다 이루어지는 줄 알았는데 나의 힘이 닿지 않는 외부환경에

의해 그것이 실패로 돌아갔거든요. 그러자 누군가 그러더군요. "해도 안 되는 게

있는 게 인생임을 알아줬음 좋겠다"라구요. 저에게는 너무도 큰 혼란이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꼬리를 잡을 수 없고 아무도 명쾌히 답해주지 못했던 이 질문에

교수님은 너무도 깔끔하게 대답해주셨습니다. 너무 감사드립니다. 교수님은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한 길을 제시해주셨고 어떤 일을 판단하는

기준도 알려주셨습니다. 또 저는 늘 남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었는데

교수님께서 그러셨죠. 죽을 때 내 삶을 판단하는 것은 나 혼자라고. 그 한마디가

저에게 얼마나 크게 와 닿았는지 모르실 겁니다. 정말 너무 감사합니다..."

 

이 편지를 읽으시는 분은 누구나 이 편지를 받은 사람의 기쁨을 이해하실 겁니다.

이 편지는 스승의 날을 맞아 학생이 스승에게 쓴 것입니다.

어버이날 선생님의 강요(?)에 의해 할 수 없이 쓰는 어린이들의 편지에도

진실이 배어나오기 마련입니다. 하물며 자의식이 햇살 같은 대학생의 편지이니

시작부터 끝까지 그의 마음이 투명하게 반영되어 있는 게 당연하겠지요.

아무리 훌륭한 스승도 몰라보는 사람 앞에서는 스쳐 지나치는 행인에 불과합니다.

이 학생과 함께 수업에 참여했다고 해서 모두 이 학생처럼 "답"을 얻진 못했을

겁니다. 결국 선생을 좋은 선생으로, 부모를 좋은 부모로 만드는 건 학생이고

자녀입니다. 누구에게서든 배우려 하는 학생, 그가 훌륭한 스승을 만듭니다. 

 

운명과 자유의지에 관해 스승이 뭐라고 했는지 나와 있지 않아 유감이지만,

읽는 분들 각자 답을 구하실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름날이 길고 덥다 해도 진지한 생각을 하다 보면 금방입니다.

깊은 물 속 둥근 돌을 들여다보듯, 자신을 들여다 보는 여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