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여름나기 (2010년 6월 4일)

divicom 2010. 6. 4. 09:35

사계절 중 여름이 가장 고통스럽습니다.

여름의 자연적 요소들인 뜨거운 햇살이나 잦은 비 때문이 아니고

그런 요소들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몸짓 때문입니다.

옷을 너무 조금 입은 사람들, 아무렇게나 행동하는 사람들...

제일 큰 고통을 주는 건 너무 일찍 에어컨을 켜는 사람들입니다.

 

아직 기온이 삼십도도 되지 않는데다 습도도 낮아

덥다고 비명을 지를 정도도 아닌데, 버스를 타면 에어컨 때문에

기침을 하게 됩니다. 에어컨 바람을 약하게 해달라고 부탁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부탁을 받은 운전기사 중에 과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많아서입니다. "누구는 켜달라, 누구는 꺼달라,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거야" 하는 혼잣말 아닌 혼잣말을 듣게 되기 일쑤입니다.

이러니 몸이 약한 사람은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기도 어렵습니다.

 

사회의 기준은 상식이고, 상식이 작동하지 않을 때는 법의 개입이 필요합니다.

환경을 생각해도 그렇고 약한 사람들의 건강을 생각해도 그렇고

대중교통수단의 에어컨 작동지침 같은 것이 하나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버스마다 온도계와 습도계를 비치하고,

"버스 안의 온도가 섭씨 30도 이상이고 습도가 50퍼센트 이상일 때

에어컨을 작동할 수 있다"는 식의 구체적인 규칙을 정하는 것이지요.

모호한 규정은 범법자를 양산하니 법적인 조항들은 구체적일수록 좋습니다.

그렇게 하면 유독 더위를 타는 승객이 "아유 더워, 아저씨, 에어컨 좀 켜요!"하고

소리친다 해도, 기사가 당당하게 "온도와 습도가 낮아 켤 수 없습니다.

창문을 여시지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로 영국의 작가 조지 기싱(George Robert Gissing)이 여름날에 대해 쓴 글을

옮겨봅니다.<기싱의 고백>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한여름에 기승을 부리는 더위 속에는 일종의 장려함이 있어서

우리의 마음을 고양시켜주기도 한다. 도시의 거리에서 더위를 참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런 거리에서조차도, 안목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하늘의 화려함이

그 자체로는 조야하고 지긋지긋해보이는 것들에게까지 아름다움을 나누어준다."

  

부디, 올 여름엔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더위 속 장려함을 발견하여 오히려 마음을 고양시키고, 스스로 안정을 유지하여

더위를 이기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