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아흔'이 된다는 것(2017년 8월 26일)

divicom 2017. 8. 26. 06:59

요즘 더욱 자주 아버지가 생각납니다. 하늘이 2년 전 가을 아버지가 떠나시던 날처럼 파랗고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아흔에 돌아가신 아버지... 남들에겐 길어보이는 그 생애가 제 가족에겐 안타깝게 짧은 시간입니다. 모든 신체적 

에너지가 고갈되어'더는 숨을 쉴 수 없는' 경지가 되어 돌아가셨으니 더 사셨더라도 당신이 원하는 사람으로 사시진 못했을 거라는 사실에서 위안을 받습니다.


자살하는 사람의 죽음은 정신에 먼저 오는 일이 많지만 천명을 사는 사람의 죽음은 욱체에 먼저 찾아옵니다. 

육체가 죽어가면 육체에 깃들어 있던 정신도 함께 죽거나 육체를 떠나는 것이지요. 


아버지가 아흔에 떠나실 때까지 저는 한 번도 아버지가 '늙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습니다. '몸이 약해지셨다'고 

생각할 뿐 '늙으셨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건 그분의 정신이 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평생 약골로 고생하시면서 

아흔까지 사신 것도 쇠약한 육체를 끌고 간 늙을 줄 모르는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아버지를 닮아 늘 빌빌하는 몸이지만 아버지의 삶을 보았기에 나이드는 게 무섭지 않습니다. 

나이는 자유로 가는 기차, 그 기차는 속도가 느린 만큼 보이는 것도 많고 잘 보입니다. 

언제 내리게 되든 기쁘게 내리겠지만 타고 있는 동안엔 열심히 보고 쓰겠습니다.


요즘 제 또래들과 선배들 중엔 빠르게 늙어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육체적으로 건강한 사람들 중에

그런 사람이 많으니 육체의 에너지와 정신의 에너지는 아무 상관이 없나 봅니다.

건강한 몸에 솟구치는 에너지를 발산하기 위해 매일 산에 가고 여기저기서 큰소리를 치는 노인들을 볼 때면

참 안타깝습니다.

 

마침 김수종 선배가 노인의 창의력에 관한 글을 자유칼럼에 쓰셨기에 아래에 옮겨둡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50대 중반부터 '잉여인간'이 되어 세상을 떠도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들에게 사회에 기여할 길을 열어주는 것, 그것은 그들에게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사회를 건강하고 건전하게 만들고 나라 경제에도 보탬이 됩니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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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넘어 창의력이 빛나는 사람들

2017.08.25

자주 보는 광경일지라도 보는 사람의 심리상태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상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팔월 초 어느 조찬 모임에 참석했는데 출근 시간에 맞춰 8시 30분에 회의가 끝났습니다. 직장이 없는 나는 귀가하기 위해 광화문 지하철역으로 갔습니다.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는 사람은 나 혼자일 것 같았는데 출근하는 젊은 직장인들이 입추의 여지없이 계단을 꽉 채우고 밀물처럼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순간 나는 세상 사람들의 흐름에서 이탈하여 퇴장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정신없이 출근하는데 나는 하릴없이 집으로 가는구나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바쁜 하루였는데도 말입니다. 일종의 사회적 유리감(遊離感)이라고도 할 수 있고, 이제 사회의 주류에서 역행하여 가는구나 하는 생각 같기도 했습니다. 

사실 나이 들어 틀에 박힌 직장 일에서 해방된다는 것은 유쾌한 자유를 느끼게 하는 일인데, 이날 지하철에서의 느낌은 좀 색달랐습니다. 아마 그때 아주 가까운 친척 중 한 사람의 부음을 들어 충격이 컸던 터라 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나이 먹는 것을 얘기할 때면 나는 이 ‘자유칼럼’ 필자의 한 사람인 황경춘 선생님을 떠올립니다. 그는 93세입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 연령에 무슨 일을 한다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는데, 그는 글을 쓰는 정신노동을 건강하게 하고 있습니다.  글 쓰는 것이 보통 힘든 게 아닌데, 어디서 그런 정신력과 창의적 사고력이 마르지 않고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광화문 지하철역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난 며칠 후, 황경춘 선생님이 일본의 106세 의사 히노하라 시게아키(日野原重明) 박사의 사망과 관련한 글을 ‘자유칼럼’에 썼습니다(8월 8일자). 글 제목은 ‘나이 먹는다는 것은 성숙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뉴욕타임스도 히노하라 박사의 부음 기사를 비중 있게 다뤘는데 ‘106세 의사가 일본에게 오래 사는 법을 가르쳤다’라고 제목을 붙였습니다. 

히노하라 박사는 1911년생입니다. 일제가 조선을 강탈한 한일합병 이듬해에 태어났으니 파란만장한 20세기를 다 겪고 4차산업혁명이 싹트는 21세기까지 경험한 사람입니다. 
히노하라 박사는 그의 장수가 화제가 아니라, 스스로 과식과 조기 은퇴를 거부하고, 일본이 세계 최장수 국가가 되도록 창의적인 의학적 조언과 병원 임상시설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그의 삶의 궤적이 관심거리입니다. 그가 2020년 도쿄 올림픽을 구경하겠다는 스케줄까지 짜놓고 타계한 게 아쉽지만, 그의 소신대로 생명연장 장치를 거부하고 병원이 아니라 집에서 편안히 눈을 감았다는 사실은 먼 동화나라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몇 달 전 외신에 소개된 늦깎이 성공사례를 읽으면서 나이 먹은 사람들의 천재성을 꽃피우는 것은 그 사람이 사는 사회 환경이라는 걸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들면 창의력이 사라진다는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들이 사회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1946년 2차대전 직후 24세 나이로 시카고대학 물리학과에 지원한 제대 군인 죤 굿이너프는 교수로부터 “너무 나이가 들어 성공할 수 없으니 포기하라”는 경고를 받았습니다. 
그가 바로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스마트폰의 리티움이온 배터리를 발명한 사람입니다. 1980년 그의 나이 58세 때였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올해 95세인 굿이너프 박사는 그가 봉직한 텍사스주립대학교 오스틴 캠퍼스 동료 연구원들과 함께 새로운 배터리를 고안하여 최근 특허출원을 한 것입니다. 이 특허가 상업화될 경우 배터리는 더욱 값싸지고 가벼워지며 안전해지게 된다니 늙은 과학자의 천재성이 빛나는 것을 보게 되는 겁니다.

굿이너프 박사의 인생이 말해주는 것은, 사람은 나이를 많이 먹어도 두뇌활동은 그 사람의 열정과 목적의식에 의해 창의성을 얼마든지 발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굿이너프 박사는 어린 시절 냉장고가 아니라 아이스박스에 음식을 저장하고 석유램프를 쓰던 시대에 태어나 자랐습니다. 아버지가 구입한 포드 휘발유 차를 탔습니다. 1970년 석유위기 때 그는 에너지를 배터리에 저장해서 쓰면 될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에서 배터리 연구에 몰입했고, 그게 성공하여 오늘날 휴대전화와 전기자동차에 쓰는 리티움이온 배터리를 발명한 것입니다. 
그가 새로 출원한 배터리 특허가 상업화에 성공하면 전기차 보급은 더욱 앞당겨지고 세상은 더욱 편해질 것입니다. 덩달아 그가 최고령자로 노벨상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하니 기대도 됩니다.

늦깎이 성공에 대한 굿이너프 박사의 인생관이 특이합니다. “거북이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거북이는 계속 기어가야 합니다. 인생을 기어가는 것도 이득이 될 때가 있습니다. 다른 분야에 곁눈질하다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하게 되거든요." 그는 물리학 공부를 시작으로 화학에 뛰어들었다가 다시 소재과학을 연구해서 리티움이온 배터리을 고안해낸 겁니다. 그의 곁눈질은 과학 쪽만 아니고 사회 및 정치현상으로도 돌렸기에 온실가스를 줄이는 배터리 연구에 열정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노년의 장점에 대한 그의 생각이 참 흥미롭습니다. 노년은 새로운 지적(知的) 자유를 준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일자리를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페이스북을 창업한 마크 저커버그는 2007년 그의 나이 23세 때 스탠퍼드대학 행사에서 “젊은 사람이 정말 훨씬 스마트하다.”고 말했고, 그 이후 실리콘밸리에서는 젊은이 흠모열이 더욱 달아올랐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후 저커버그는 그런 말을 한 것에 사과했다고 합니다. 미국의 한 연구재단이 조사한 것을 보면 발명가의 절정 나이는 40대 후반이고 연구경력 전체를 놓고 볼 때 후반기에 더욱 생산력이 높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히노하라 박사나 굿이너프 박사 같은 사람이 드물기 때문에 화제가 되는 것이긴 하지만, 정년을 맞아 은퇴하고서도 20~30년을 방황하게 될 이 시대의 노·장년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신문이나 방송에 나올 대단한 일이 아니더라도 각자 나름대로의 조그만 일을 찾고 국가나 사회가 이를 장려하고 도와주는 정책을 펴는 데 청년실업에 쏟는 정부 투자의 10분의 1이라도 투입한다면 사회가 좀 밝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이 먹은 사람들이 활기차게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청년 세대에게 더 희망을 주는 길이 아닐까요.

나이를 먹을수록 창의력이 말라버린다는 게 일반적인 통념입니다. 한국 사회에 더욱 그런 통념이 강한 것 같습니다. 본인도 가족도 모두 소년출세를 바랍니다. 
우리나라는 장수사회 또는 노령사회로 접어들었습니다. 늦게 피는 꽃처럼 환경이 뒷받침되면 나이를 먹어도 지혜와 잠재했던 창의력이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창의력은 나이와 함께 쇠잔해버린다는 일방적인 편견과 싸우고, “이제 나이가 들었는데 그만 쉬시죠.” 라는 주변 분위기에 주눅 들지 않는 노년의 이유 있는 반란이 필요한 시대인 것 같습니다. 본인을 위해, 가족을 위해, 그리고 사회를 위해.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김수종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 생활. 환경과 지방 등에 대한 글을 즐겨 씀.
저서로 '0.6도'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등 3권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