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김수자가 그린 엉겅퀴 (2017년 7월 31일)

divicom 2017. 7. 31. 23:08

허리가 고장나 한동안 그림을 그리지 못한 일러스트레이터 김수자 씨의 블로그에 

오랜만에 꽃이 피었습니다. 그림도 글도 좋아 여기 옮겨둡니다. 


김수자 씨의 블로그 '시시(詩詩)한 그림일기'에서는 화가의 손에서 

새 생명을 얻은 시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림 바로 아래에는 이영주 씨의 시가 있고

그 아래 "여름의 한가운데 와 있다."부터는 김수자 씨의 글입니다.



종이에 색연필






내가 문을 닫을 때 그는 유리창을 연다
결핍된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떠나야 해

아프리카에는 새의 눈물을 닦아주는 나방이 있다고 한다

어두운 땅에서는 비가 오고
모든 화학식이 뒤바뀐다

죽으러 이런 곳에 다시는 오지 마

우리는 진흙탕에 손을 넣는다
두 손으로 물을 떠서 마신다

자기 목소리 바깥으로 가자




여름의 한가운데 와있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에 유배를 떠나 원치 않는 휴가를 다녀온 기분이다.
인생의 반을 건너왔는데 내 한몸도 건사 못할 만큼 서툴다.
집을 나서는 내게 길가 '엉겅퀴'가 가시 돋친 아침 인사를 건넨다.
붉은 불꽃머리에 꼿꼿한 허리를 뽐내며 구부정한 내 모습을 비웃는 양 - 
태양에 지지 않을 기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앙칼진 이름, 엉겅퀴. 나도 네가 부럽다.
이제 다시 내 목소리 바깥으로 나갈 수 있을까?


[출처] 여름 - 이영주|작성자 illustpo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