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맞춤형 인간'의 시대가 왔습니다. 유전자가위를 이용한 유전자 편집... 영화 '가타카'가 떠오릅니다.
버스나 기차에선 운전대를 잡은 사람이 승객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듯, 유전자가위를 가진 사람들이 인간과 인생을
좌지우지하게 된 것입니다. 술에 취했거나 인격적 장애가 있는 운전자의 손아귀에 든 승객들이 절망적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보다 훨씬 큰 재앙이 인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도대체 인류 중에 유전자가위를 마음대로 사용해도 되는 사람이 있을까요? 과학의 '진보'가 정말 '진보'일까요?
인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사소한 것들에 싸여 인류의 운명은 잊고 사는 사람들에게 방재욱 교수의 에세이는 큰 물음을 던집니다. 지난 20일에 자유칼럼에서 보내준 방 교수의 에세이를 아래에 옮겨둡니다.
| | | | | 세계 저명 과학저널인 네이처(Nature)는 금년 3월호에 ‘유전자 편집 시대의 시작(Dawn of the gene-editing age)’을 표지의 주제어로 실으며 ‘유전자가위’에 대한 다양한 연구 내용과 전망을 소개했습니다.
2015년 4월 중국의 연구자들이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인간의 배아(胚芽)를 대상으로 유전자 교정을 시도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전자가위 기술의 활용에 대한 국제적 관심과 우려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8월 31일 ‘국회바이오경제포럼’ 주관으로 ‘CRISPR 유전자가위 기술 연구개발,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의 포럼이 개최된 바 있습니다. 이렇게 과학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서 우리 곁에 사회 상식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유전자가위는 무엇이며, 앞으로 인류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천이나 종이를 자를 때 사용하는 가위처럼, 유전자가위는 유전자를 간직하고 있는 DNA 가닥의 특정 부위를 원하는 대로 잘라내 다시 붙이고, 편집 교정(editing)도 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유전자가위는 단순하게 DNA 염기서열의 특정 부위를 인지해 절단하는 제한효소(制限酵素, restriction endonuclease)를 일컫는 '천연 유전자가위'와 제한효소의 성능을 인위적으로 높여 유전자 조작에 활용하는 1, 2, 3세대 '인공 유전자가위'로 구분이 됩니다.
제한효소를 이용한 DNA의 재조합 기술이 의료산업에 처음 이용된 실례로는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코헨(S. Cohen)과 UC샌프란시스코의 보이어(H. Boyer)가 개발한 당뇨병 치료제인 인슐린의 인공적 생산을 들 수 있는데, 그 과정은 그리 복잡하지 않습니다. 우선 인슐린을 암호화하는 유전자를 제한효소로 잘라낸 다음 운반체(벡터, vector) 기능을 하는 플라스미드(plasmid)에 삽입해 대장균에 도입합니다. 그리고 인슐린 유전자가 도입된 대장균을 대량 번식시켜 대장균 내에 생성된 인슐린을 모아 정제하면 당뇨병 치료에 이용되는 인슐린을 대량으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한효소는 6~8개의 염기서열만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플라스미드라는 운반체를 사용해야만 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러한 제한효소의 결점을 보완해 1세대 인공 유전자가위가 탄생했습니다. 그것은 미국 존스 홉킨스대학의 찬드라세가란(S. Chandrasegaran)이 ‘DNA 인지 능력’을 지니고 있는 징크핑거(Zinc Finger)란 단백질과 세균들이 사용하는 ‘DNA 절단 능력’을 지닌 제한효소 중 하나인 Fok1을 결합해 개발한 ‘징크핑거 뉴클레아제(ZFN, Zinc Finger Nuclease)’입니다. 징크핑거는 1985년에 아프리카 발톱개구리의 유전자를 연구하던 중 특정 염기서열에 결합하는 아연이 결합된 손가락 모양의 단백질 구조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이 유전자가위는 2002년부터 유전자 교정 기술로 이용되기 시작하였으며, 현재 에이즈(AIDS), 혈우병, 알츠하이머 등의 유전적 치료에 사용하기 위한 임상실험이 진행 중입니다.
징크핑거도 설계와 제작 과정이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들며, 사용 중 오작동이 많이 발생하는 결점이 있어 활용에 어려움이 뒤따랐습니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식물성 병원체인 '잔토모나스(Xanthmonas)를 이용해 개발된 2세대 유전자가위가 ‘탈렌(TALEN, Transcriptor Activator-Like Effector Nuclease)’입니다.
탈렌을 구성하고 있는 아미노산 서열이 절단하는 DNA의 염기서열과 일치하기 때문에 탈렌의 아미노산 서열을 변경시키면 결합 대상 DNA의 염기서열도 달리 할 수 있어 단백질을 맞춤식으로 간단하게 변형시킬 수 있습니다. 2009년 개발되어 2011년 말부터 활용되기 시작한 탈렌 기술은 C형 간염, 고콜레스테롤혈증 등과 같은 질병 치료의 모델링에 유용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징크핑거나 탈렌도 인식 염기서열이 10개 내외로 짧으며 제작이 쉽지 않고, 경비가 많이 드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2012년 말에 이런 결점을 보완해줄 수 있는 3세대 유전자가위가 개발되었는데, 그것은 DNA를 잘라주는 제한효소인 Cas9에 RNA를 결합해 만든 '크리스퍼(CRISPR-Cas9)'입니다. 크리스퍼에서 가이드 역할을 하는 RNA가 교정을 목표로 하는 DNA 염기서열에 달라붙으면 Cas9이 DNA의 특정 부위를 잘라냅니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는 제작이 용이할 뿐만 아니라 비용이 적게 들어 현재까지 개발된 유전자가위 기술 중 최고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크리스퍼는 구조가 단순해 세포 내로 쉽게 들어가는 장점이 있지만, 시스템의 오작동에 대한 대비가 없을 경우 원하지 않는 부위를 자를 수 있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 연구진(김진수 교수/서울대, 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에 의해 Cas9가 아닌 Cpf1 효소를 이용해 유전자 교정의 효율성을 높인 크리스퍼 유전자가위가 개발되어 3.5세대 유전자가위 기술로 지목받고 있습니다.
유전자가위 기술은 머지않은 장래에 유전자 치료, 장기이식이나 신약개발을 위한 모델동물 생산, GMO 개발 등과 같이 우리 삶과 연관된 분야에서 커다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술의 개발과 활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윤리적, 제도적 문제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유전자가위 기술을 이용해 인간의 수정란이나 배아의 유전자를 조작해서 원하는 유전자를 지니고 태어날 수 있는 ‘맞춤형 아기’ 문제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맞춤형 아기’를 생각하면 1997년에 개봉된 앤드루 니콜(A. Niccol) 감독의 ‘가타카(GATTACA)’가 연상됩니다. 인간이 유전자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가타카의 세상에서 인간은 두 계급으로 구분이 됩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자라 자연적으로 출생한 인간이 ‘부적격자’로 취급되고, 인공적으로 출생한 인간은 ‘적격자’로 대우받습니다. ‘맞춤형 아기’가 적격자로 대우받는 세상인 것이죠.
다른 사회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과학기술 연구 결과의 활용에도 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함께 하기 마련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유전자가위 기술이 바르게 쓰이기 위해서는 이 기술에 대한 사회적 인식 확산과 함께 기술의 활용에 대한 바른 가치관이 확립되어야 합니다. 이제 유전자가위 기술을 제대로 인식하고, 사회적 소통과 합의를 통해 유전자가위 기술의 활용 문제를 앞으로 다가올 시대의 가치관에 맞도록 긍정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
|
| 필자소개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