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s 즐거운 산책

극빈 (2012년 8월 4일)

divicom 2012. 8. 4. 15:52

오늘 아침 교통방송에서 '즐거운 산책'을 들으려 하신 분들은 깜짝 놀라셨을 겁니다. '즐거운 산책' 대신 휴가객들을 위한 교통안내 프로그램 '하계 휴가철 특별 생방송'이 방송되었기 때문입니다. 방송국에서 갑자기 결정한 까닭에 지난 주에 미리 예고해드리지도 못했습니다. 놀라신 분들께 죄송합니다. 내일 '즐거운 산책'은 예정대로 방송되지만, 다음 주 토요일 방송은 오늘처럼 휴가철 특별 생방송으로 대체되고, 그후에는 다시 정상적으로 방송됩니다.


오늘 '즐거운 산책' 시간에 읽어드리려 했던 시는 문태준 시인의 ‘극빈 3’입니다. 2008년 7월에 발행된 시집 ‘그늘의 발달’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여기 적어두니 한 번 읽어보시지요.



극빈 3

--저 들판에


아무도 없는 빈 들판에 나는 이르렀네


귀 떨어진 밥 그릇 하나 들고


빛을 걸식하였네


풀치를 말리듯 내 옷을 말렸네


알몸으로 누워 있으면


매미 허물 같은 한나절이 열 달 같았네


배 속의 아가처럼 귀도 눈도 새로이 열렸네


함께 오마 하는 당신에겐 저 들판을 빌려주리



시인은 이 시의 행과 행 사이에 빈 줄 하나씩을 넣었습니다. 한 줄씩 천천히 읽으라는 얘기이겠지요. 옷을 꾸며 입고 사람들과 부대끼던 일상을 벗어버리고 때로 이렇게 ‘알몸’으로 절대 고독의 상태를 겪어야 ‘귀도 눈도 새로이’ 열리는 거겠지요. 이 시집에는 ‘물끄러미’라는 시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가끔 자신과 자신의 삶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헐거워지는 일로 하루를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시의 행들 사이엔 빈 줄이 없습니다.



물끄러미


한낮에 덩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입이 뾰족한 들쥐가 마른 덩굴 아래를 지나가는 것

을 보았다

갈잎들은 지는 일로 하루를 살았다

오늘은 일기(日記)에 기록할 것이 없었다

헐거워지는 일로 하루를 살았다

나는 식은 재를 손바닥 가득 들어 올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