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칼럼

김 선생 댁 사과 (2007년 11월 7일)

divicom 2009. 11. 19. 11:49

십일 월 초하루는 제가 처음 일했던 회사의 생일입니다. 그곳을 떠난 지 이십 년이 되어 가고 함께 했던 동료들도 몇 남지 않았지만 지금도 그곳을 애정으로 지켜봅니다. 생일 선물로 무엇을 보낼까 고민하다가 바로 전날에야 김선생 댁 사과 생각이 났습니다.

김선생은 제 마지막 직장의 선배이지만 같이 일해본 적은 없습니다. 그 분이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충남 예산에서 사과를 키우기 시작하신 후에 제가 그 회사 직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가끔 선후배가 동석하는 자리에서 뵈면 목례나 나누는 사이였습니다.

그러다 시월 어느 날 오랜 동무 덕에 그 댁 사과를 처음으로 먹어 보았습니다. 어여쁜 노을 빛에 향기는 어떤 꽃보다 아름다웠습니다. 맛을 본 이웃들이 모두 칭찬하니 내 아이가 칭찬받는 것처럼 기분이 좋았습니다.

사과를 부탁하러 김선생 댁에 전화를 드렸더니 양광 사과는 끝이 났고 부사는 열흘 후쯤 수확할 거라고 했습니다. 대개는 딸 때가 되었지만 아직 조금 덜 영근 사과들을 기다려 한번에 딴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야 크기와 품질에 따라 분류하여 제 주인을 찾아줄 수 있으니까요. 이해는 하면서도 서운해 하는 걸 읽으셨는지 왜 꼭 지금 사과가 필요하냐고 물으셨습니다. 이유를 들으시더니 알았다고, 보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의 성격상 제일 탐스러운 녀석들로 골라 따서 보내시고 값은 제대로 받지도 않으실 거라 생각하니 송구스러웠지만 옛 동료들에게 진짜 사과 맛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앞섰습니다. “오늘 오후 4시 전에 택배로 보내면 내일 도착할 테니 걱정 마세요.” 선생님 말씀이 음악 같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회사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김선배, 감사합니다. 이번에 받은 선물 중에 제일입니다.” 후배의 목소리에서 사과 향처럼 진한 진심이 풍겼습니다. “농약 별로 쓰지 않은 사과이니 깨끗이 씻어 깎지 말고 먹어요.” 내가 키운 사과인 듯 자긍이 실린 목소리로 말해주었습니다. 예산 댁에 전화를 드렸지만 벌써 과수원에 나가셨는지 받지 않으셨습니다. 일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망설이다가 핸드폰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한참 만에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선생님, 이제 막 사과를 잘 받았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네, 내가 지금 갖다 주고 오는 길이에요.”
“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어제 일을 하다 보니 늦어져서 택배로 보내면 오늘 못 들어갈 수가 있겠더라고요.”
“네? 아니 그러면 그냥 말씀을 하시지, 그 먼 길을…”
“서울 올라온 김에 우리 집 강아지 사료 사가지고 가려고 마트에 왔어요.” 이런 분이 키우는 사과라 그런 맛이 나는구나! 혼자 생각했습니다.

통화를 끝낸 후 선생님의 농협계좌로 사과 값에 자동차 기름 값을 조금 보태어 보냈습니다. 훌륭한 예술품을 싼 값에 살 때처럼 미안하면서도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 행복의 끝에서 며칠 전 겪은 불쾌한 일이 떠올랐을까요?

담배를 끊은 후 늘 입이 슬픈 애인에게 줄 홍삼 사탕을 사러 신촌 “ㅎ” 백화점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전에는 지하 1층 오가는 길목에 정관장 홍삼과 농협 홍삼이 어깨를 겯고 있었는데 그날 가보니 농협 제품은 보이지 않고 정관장 홍삼은 반대편에 독립된 가게를 널찍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무설탕 홍삼 사탕을 찾으니 매니저로 보이는 직원이 금속 통에 담긴 걸 가리켰습니다. 빨간 바탕에 금박 무늬 통은 예쁘긴 해도 내용물이 너무 적은데다 사탕을 먹고 나면 통을 버리게 되니 낭비입니다. 그 얘기를 하며 종이 가방에 담긴 걸 달라고 했지만 제 얘기는 듣는 둥 마는 둥, 통에 든 무설탕 사탕을 사든지 종이 가방에 든 설탕 사탕을 사든지 하라고 했습니다. 말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무례한 태도가 거슬려 돌아 나왔습니다. 이틀 후 다른 가게에서 종이 포장된 무설탕 사탕을 샀습니다.

그렇게 보아서 그런지 그 사람과 같은 사람들이 자꾸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돈을 쓰면서 무례한 건 꼴불견이지만 돈을 벌려고 애쓰며 무례한 건 어리석습니다. 돈은 사람에게 있고 사람들은 기분이 좋을 때 지갑을 여니까요.

그날 일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지 않지만 김선생 댁 사과가 있어 다행입니다. 소음에 시달린 귀를 음악으로 씻듯 사람으로 인한 불쾌감은 사람이 주는 감동으로 씻을 수 있으니까요. 선생님의 사과로 기분 나쁜 일을 지우는 건 불경不敬이지만, 선생님은 이런 저를 용서하실 겁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