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칼럼

두 여자 이야기 (2007년 10월 5일)

divicom 2009. 11. 19. 11:33

추석 연휴에 이어 주말도 지났습니다. 이여사는 오랜만에 조용한 식탁에 앉아 신문을 봅니다. 미얀마 사태는 끔찍하지만 먼 나라 얘기, 두어 번 혀를 차고 지나갑니다. 그러나 다음 면에 실린 “‘100세 장수 노인’ 크게 늘어”라는 제목을 보자 숨이 턱 막힙니다. 한숨을 길게 내쉰 후 읽어봅니다. 10월 2일은 제 11회 노인의 날, 100세가 넘어 정부로부터 장수의 상징인 청려장 지팡이를 받은 노인이 사상 최대인 684명이라고 합니다.

시어머니 방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옵니다. 어머니는 아흔이 넘었지만 정신과 육체가 모두 정정하고 식사도 적잖게 하십니다. 아침 열 시에 아파트 구내 노인정으로 출근하여 저녁 여섯 시 퇴근합니다. 스무 명 남짓 노인들이 모여 노는 그곳에서 어머니는 최고령답게 대장 노릇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거의 40년 전 맏며느리가 되면서부터 겪기 시작한 일들이 모두 어제 일 같습니다. 며느리가 들어오자 새로 고용한 종복從僕을 다루듯 하던 어머니.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림하며 사는 게 제일이라는 주위 어른들의 말씀대로 직장을 그만두고 열심히 살았지만 어머니는 사람 대접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루 종일 며느리를 홀대하다가도 아들 퇴근 시각이 되면 오히려 홀대 받은 노인인양 소파 끄트머리에 앉아 아들을 기다렸습니다. “엄마, 왜 그러고 계세요? 저 사람이 뭐 잘못 했어요?” 효자인 남편이 미끼를 무는 물고기 같을 때는 남편도 집도 낯설었습니다. “할머니, 가지마!” 하고 울부짖는 아이들을 못 본 채 시누이네 집을 향하던 어머니는 참으로 야속했습니다.

세월은 흘러도 어머니는 여전합니다. 아들이 있을 때와 없을 때, 태도를 달리하는 “여자”입니다. 그나마 다행인건 어머니와 함께 있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겁니다. 아이를 출가시키는 친구들, 부모를 떠나 보내는 지인들, 끝없는 행사와 모임이 이여사를 집 밖으로 불러냅니다. 오늘도 저녁 약속이 있습니다. 막내 아들네서 두 달을 지내고 온 어머니가 혼자 식사를 하실 테니 밥, 국, 반찬을 차려 놓고 나가야 합니다.

냉장고를 열 때마다 어머니가 막내 아들 집에서 가지고 온 무즙이 눈에 띕니다. 맨날 어서 가야지, 어서 죽어야지 하면서도 몸에 좋다는 건 다 드시고 다 하십니다. 말로는 뭐라 하든 어머니는 백 살을 넘겨 살고 싶은 노인입니다. 나는 절대로 저렇게 늙지 말아야지, 미워하며 배운다는 말대로 되진 말아야지, 다짐하며 상을 차립니다.

신씨 할머니의 주민등록 번호는 150xxx으로 시작합니다. 잊고 싶은 나이를 상기시키는 사람이 너무 많아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할머니, 올해 연세가 몇이세요?” 하고 물어 아흔 셋이라고 하면 “어머나, 너무 곱고 정정하세요! 백수하시겠네!” 하고 감탄을 합니다. 언제 들어도 싫지 않습니다.

하는 일 없는 나날이 권태로울 때도 있었지만 지금 사는 아파트엔 노인정 재미가 쏠쏠하여 하루가 짧습니다. 오래 누워 앓으면서 자식들 귀찮게 하는 일만은 피하고 싶어 사회복지사와 자원 봉사자들이 가르쳐 준 대로 운동도 열심히 하고 음식도 골고루 먹습니다. 그래서인지 큰 병 없이 아흔 고개를 넘었고 마음은 아직도 일일 연속극 속 청춘 같습니다. 혹시라도 며느리가 “이 노인네, 왜 이렇게 오래 살아?” 할까 봐 짐짓 “왜 이렇게 오래 살까? 어서 가야 할 텐데…” 하면 며느리가 무섭게 말허리를 자릅니다. “어머니, 정말 돌아가시고 싶으세요? 마음에도 없는 말씀, 하지 마세요.” 언제부턴가 한 마디를 하면 열 마디가 돌아옵니다. 예전엔 엄마 편을 들던 아들도 이젠 아내 편이 다 되었습니다.

이십 년 전 어느 날 밤 며느리가 울면서 퍼붓던 말이 생각납니다. “치사해서 이런 얘기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흑, 둘째 임신했을 때 첫째 업고 어머니하고 어디 다녀오는 길이었어요. 흑. 길에서 단감 한 무더기 사시더니 감 장수 칼로 그 자리에서 하나를 깎으셨지요, 흑. 포 뜨듯 얇게 한 조각 떠 내게 주시고 나머지는 다 당신이 드시는데 얼마나 서운하던지, 흑, 임신하면 먹고 싶은 게 많잖아요, 흑 흑. 집에 와서는 단감을 모두 씻어 들고 방으로 들어가시더니, 방안에서 아범하고 둘이 다 먹고 빈 접시에 껍질만 내놓으셨지요, 흑 흑. 처음엔 서운해서 눈물이 나다가 그 다음엔 내가 어쩌다 감 한 조각에 연연하는 인간이 되었나, 창피하고 비참해서 혼자 울었어요, 흑 흑 흑.”

그때 아들은 “우리 어머니, 그런 사람 아니야!” 하고 역성을 들었는데 할머니는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알 수 없으면서도 아들의 역성이 좋았습니다. 할머니가 며느리일 때 시어머니는 늘 하고 싶은 대로 했어도 아무도 그걸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시어머니가 되어 시어머니가 하던 걸 따라 하는데 왜 문제가 되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하긴 알 수 없는 일은 그것뿐이 아닙니다. “어멈”이 집밖으로 도는 건 크나큰 흉이었는데 요즘 어멈들은 하루도 집에 붙어 있질 않습니다.

추석엔 온 집안이 들썩거렸습니다. 출가한 손주들이 제 아이들까지 거느리고 와 주인 노릇을 했습니다. 일흔이 넘은 아들부터 두 돌도 안된 손녀까지 모두 며느리 옆으로만 모였습니다. 신씨 할머니에겐 “안녕하셨어요? 편안하시죠?” 한두 마디하고는 그만이었습니다. 누군가 “할머니!” 해서 돌아보면 며느리를 부르는 소리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며느리가 할머니가 된지도 여러 해가 흘렀습니다.

근 일주일 만에 나간 노인정은 자손들에게서 받은 추석 선물과 돈을 자랑하는 목소리들로 소란스러웠습니다. 할머니는 막내 아들네서 다달이 받는 용돈을 추석 선물인양 자랑하고 다른 날보다 일찍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며느리가 차려 놓은 식탁에 앉아 며느리가 보다 둔 신문을 봅니다. “‘100세 장수 노인’ 크게 늘어”라는 제목의 기사에 100세가 되면 나라에서 명아주로 만든 가볍고도 단단한 지팡이 선물을 준다고 써있습니다. 지나간 93년도 쏜살같았으니 남은 7년은 눈깜짝할새 지나가겠지요. 달그락 달그락 오이소박이를 씹는 틀니 소리가 경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