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한국일보에서 조선대 토목학과 임병대 명예교수의 기사를 보았습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스물한 살이었던 아들 균수씨를 잃고 지금껏 아들이 다녔던 학교에 장학금을 주고 있다고 합니다.
당시 원광대 한의대 본과 2학년이던 균수씨는 광주에 사는 가족들을 만나러 갔다가 휴교령으로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1980년 5월 21일 조선대 학생이던 둘째 형 양수씨와 금남로에 나갔다가 그곳에서 계엄군의 총에 머리를 맞아 숨졌다고 합니다. 양수씨는 동생이 숨진 다음날 계엄군에게 붙잡혀 40일 넘게 고문을 당했다고 하니 임 교수의 가족들이 겪은 고초가 어땠을까 상상조차 어렵습니다.
임 교수는 슬하에 세 아들을 두었으나 1970년에 장남을 병으로 잃고 10년 후엔 막내 아들까지 잃은 것입니다. 그는 막내 아들을 잃은 이듬해 아들이 다녔던 순창북중고와 광주 인성고에 50만원의 장학금을 내기 시작, 월급과 연금 등을 쪼개 장학금을 내온 게 올해로 30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아들의 추모비가 세워진 원광대 한의대에도 89년부터 해마다 100만원의 '무등장학금'을 보내고 있으며 90년에 정부에서 7천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하자 사재를 보태 상가 한 채를 구입, 매달 나오는 임대료도 장학금으로 쓰며 자신의 사후에도 장학금이 계속되도록 조처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슬픔과 한을 젊은이들의 희망을 키워주는 거름으로 만드신 임 교수와 가족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두 아드님의 안식을 기원합니다. 또한 5.18 민주화 의거 때 아들과 딸을 잃은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께 깊은 위로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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