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장하준 현상 (2011년 2월 20일)

divicom 2011. 2. 21. 08:49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의 책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가 한국에서 출판된 지 3개월 만에 40만부나 팔렸다고 합니다. 그 전에 출간했던 <사다리 걷어차기> <쾌도난마 한국경제>에 이어 또 한 권의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며 '장하준 현상'을 지속시키고 있습니다. 이번 책이 이렇게까지 인기 있는 이유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실망'일 거라는 게 저자의 얘기입니다.

 

장 교수는 한국인 최초의 케임브리지대 교수라고 합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 케임브리지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뒤 박사과정을 채 끝내지 않은 상태에서 1990년에 교수가 되었다고 합니다. 1963년 생이니 만 27세 때입니다. 그는 석사 공부를 할 때 원서를 읽는데 페이지당 30분씩 걸리는 바람에 다른 친구들이 5시간이면 할 공부를 10시간, 12시간 걸려 했다고 합니다. 그가 서울대 교수직에 세 번이나 지원했지만 탈락하여 케임브리지에 정착했다는 말을 들으니 기가 막혀 웃음이 납니다. 과학철학과 과학사를 가르치는 동생 장하석 씨도 작년 9월부터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로 일한다고 합니다.

 

저는 경제학자가 아니지만 경제에 관해 쓴 글을 가끔 읽습니다. 그건 경제가 여러 가지 학문 중에서도 가장 실생활과 깊은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 대부분이 영위하는 경제 생활에서 대다수가 보지 못하는 흐름을 읽어내어 미래를 예측하는 경제학자들이 참 멋져 보입니다. 한때는 현재 존스홉킨스 대 교수로 있는 프란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의 글을 재미있게 읽기도 했지만 요즘 제일 관심이 가는 건 장하준 교수의 말과 글입니다. 그가 저와 동시대를 사는 한 나라 사람이라는 게 참 자랑스럽습니다. 지난 토요일 자 한국일보에 장 교수의 '직격 인터뷰' 기사가 실렸습니다. 전체가 다 재미있지만 그 중 몇 문단만 옮겨둡니다.

 

 

"'신자유주의와 시장주의를 공박하는 책의 내용을 놓고 보수, 진보 양쪽에서 비판이 나왔다.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정체는 무엇인가.'

 '보기에 따라 좌파도, 우파도, 중도도 된다. 시장이 중요하냐 국가 역할이 중요하냐로 보면 국가 편이니까 좌파고, 급진이냐 점진이냐로 나눈다면 서서히 바꿔야 한다는 입장이므로 우파며, 자본가편이냐 노동자편이냐로 한다면 둘이 타협해야한다고 보니까 중도파다. 실은 이런 기준도 나라마다 다르다. 산업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할 경우 한국, 프랑스에서는 우파지만 영국에서는 좌파다. 중앙은행 독립을 주장하면 한국에서는 좌파가 되고 유럽에서는 우파가 된다.'

 

 '자본시장이 과도하게 개방됐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이고, 어떤 부작용을 낳았다는 것인가.

 '외국자본이 들어오는 데 제약이 없다. 인수합병도 쉽다. 미국마저 인수합병을 어렵게 하는 장치가 있는데 우리는 없다. 이미 미국, 영국 등의 자본이 많이 들어와있다. 그들은 한국을 들락거리며 환율을 요동치게 하는 등 장난을 칠 수 있다. 한국 기업을 인수해놓고 선진 기술도, 선진 경영기법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투자할 생각도 없고 고용도 불안하게 했다. 그렇게 해서 5년 안에 돈 빼 나갈 생각을 한다. 한국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이 미국 시가총액의 1~2%에 불과하기 때문에 미국 시장에서 돈이 2%만 들어와도 한국의 모든 상장기업을 살 수 있다.'

 

 '한국은 수출 비중이 높기 때문에 FTA로 시장을 키울 수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가 그동안 FTA 때문에 수출을 잘 한 게 아니다. 품질 좋은 물건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미국 자동차업계가 자국 정부에 압력을 넣어 일본 차의 진출을 막으려 했지만 품질을 앞세운 일본 차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장기적으로 보면 관세 낮춰서, 무역장벽 없애서 부자 된 나라는 없다.'

 

 '그렇다면 지금 시점에서 한미FTA는 어떻게 해야 하나.'

 '국회가 비준하지 말아야 한다. 비준을 해놓고 깼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비준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 미국도 1946년 국제무역기구(ITO)를 만들기로 다른 나라와 약속했다가 의회 비준을 받지 못해 기구 출범을 무산시킨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