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어머니의 전화 (2011년 1월 19일)

divicom 2011. 1. 19. 11:58

올해 여든 둘이 되신 저희 어머니는 여러모로 저와 다릅니다. 저는 방에 콕 박혀 있는 것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는 것보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는데, 저희 어머니는 하루라도 집에 있으면 병이 날 것 같다고 하십니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외출할 수 없으면 어머니는 대청소를 하거나 화분의 흙을 바꾸거나 배추를 사다 김치를 담으십니다.

 

인간에겐 두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한 종은 태어날 때부터 피곤한 사람이고 다른 종은 무슨 일을 해도 피곤하지 

않은 사람이라는데, 저는 전자, 저희 어머니는 후자를 대표하는 사람들인가 봅니다. 약 2년 전까지만 해도 저는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하고 어머니는 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너는 왜 그렇게 집에만 앉아 있니? 너는 밖에 

나가야 잘 되는 사주를 타고 났는데!" 어머니는 종종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저는 차마 입 밖에 내진 못하면서도 

속으로는 "엄만 왜 그렇게 돌아다녀요? 그냥 집에 좀 계시면 안되요?"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저는 태어나면서부터 의욕적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루종일 눕혀 놓아도 우는 일이 없어서 눕혀 놓은 채 일하다 보면 저 혼자 자다가 놀다가 했다고 합니다. 뒷머리가 납작하여 '프라이팬'이라는 놀림을 받게 된 것도 유아적 게으름 탓입니다. 10세 전 건강이 평생을 간다는데 저는 10세까지 먹지 않는 아이였습니다. 고기는 물론 먹지 않았고 달걀이나 떡까지 '몸에 좋은 것'은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는 게 어머니의 증언입니다. 제가 유일하게 남보다 더 먹은 것은 포도입니다. 마침 생일도 여름이어서 생일날엔 떡 대신 포도를 양껏 먹곤 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제가 외출을 싫어하는 건 체력이 부족해서입니다. 남들 노는 만큼 놀고 남들 사는 만큼 살면 제 몸은 꼭 고장이 납니다. 몇해 전까지만 해도 그것을 모르고 남들처럼 살면서 하루 걸러 한 번씩 고열에 시달리곤 

했습니다. 그러다 쉰이 넘어서야 제 몸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족한 체력을 의지로 채우며 무리했던 까닭에 그렇게 자주 아팠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불필요한 외출을 삼가고 집에 있거나 동네를 산책하며 사니 병 나는 일도 

줄었습니다.

 

어머니는 비록 15년 전쯤 위암에 걸려 수술을 하고 항암치료를 받으시긴 했지만 건강을 타고나신 분입니다. 저는 

평지에서 넘어져도 기브스를 하는데 저희 어머니는 빙판에서 넘어지셔도 끄덕 없습니다. 그러니 어머니가 당신보다 옷을 많이 껴입고도 추워하고 음식도 당신보다 조금 먹고 외출도 당신 만큼 하지 않는 딸을 이해하는 건 불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재작년 겨울 어머니의 눈으로 제 부실을 확인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나가 어머니와 

점심을 먹고 걸어가다가 잘못 깔린 보도블럭을 밟고 넘어진 것입니다. 순식간에 부어오른 발은 4개월이나 지나 

나았습니다. 처음엔 그 정도 넘어진 걸 갖고 뭘 그러느냐던 어머니가 탄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집에 가만히 잘 있는 애를 내가 괜히 불러내어 이 고생을 시키는구나, 다시는 불러내지 말아야겠구나!" 마침내 어머니는 당신과 저의 다름을 이해하시게 되었고 저도 어머니와 저의 다름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은 천천히 흐르지만 시간은 참으로 많은 일을 한다는 걸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영영 나을 것 같지 않던 발은 

나은 지 오래이고 어머니는 다시 제게 전화를 하십니다. "뭐하니? 아침부터 입맛이 없네. 연희동 가서 칼국수라도 먹어볼까?" 


조금 전에도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침부터 입맛이 없어, 그 생선조림집에라도 가볼까 하고." 

오늘 제 점심 메뉴는 생선조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