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칼럼

껍데기는 가라 (2007년 5월 10일)

divicom 2009. 11. 17. 00:03

오랜만에 내리는 비, 문득 몇 해 전 부여를 적시던 비가 생각납니다. 낮은 건물들의 어깨 위에 턱을 괸 하늘이 정림사지 푸른 마당에도 동남리 낡은 골목에도 묵은 연인의 시선 같은 비를 뿌렸었지요.

501-3번지, 신 동엽 시인 댁 툇마루는 고작 팔뚝 너비, 그 끄트머리에 젖은 몸을 얹어 놓고 낮은 담 너머 세상을 바라보았습니다. 저 풍경을 보셨겠구나, 뜨거운 가슴 누르며 이 툇마루 위 서성이셨겠구나, 누르고 누르다가 그만 병이 나셨겠구나… 시인의 시간을 한참 넘겨 살고 있는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올 초엔 부여군에서 생가 주변에 신 동엽 문학관을 세운다고 발표하더니 엊그제는 문화재청에서 생가를 문화재로 등록하겠다고 예고했습니다. 혹 시인에 대한 갑작스런 관심과 올해 치러질 선거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을까, 혼자 고개를 갸웃거려 봅니다.

“껍데기는 가라
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漢拏에서 白頭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꼭 40년 전 시인이 쓰신 “껍데기는 가라”는 선거철이면 늘 상기되고 애용됩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스스로 껍데기에 불과한 사람들이 남보다 앞서 이 시구를 인용하곤 하지요.

앞으로 일곱 달, 선거가 끝날 때까지, 신문과 텔레비전엔 자유 민주주의가 양산한 껍데기들이 주인공 노릇을 할 겁니다. 귀 닫고 눈 돌리고 싶을 때마다 시인을 생각하면 어떨까요? 아늑한 골목 안에 들어 앉아 문밖 사정 외면할 수 있었지만 오히려 푸르게 외치던 시인입니다. 꾹꾹 참고 보고 들어 껍데기 속에 숨어 있을지 모를 알맹이를 찾아내야 합니다. 도저히 찾을 수 없으면 언젠가 알맹이가 될 씨앗이라도 하나 뿌려두어야 합니다. 시인이 “錦江” 제 12장에서 노래한 의지의 낙관을 흉내라도 내야 합니다.

“…
가는 곳마다,

짚신을 삼고
멍석을 짜고
노끈을 꼬고
구럭을 얽고
果樹나무를 심고
채소씨를 뿌렸다.


그리고 우리가
혹 이 멍석 쓰지 못하고
이 채소와 과일 먹지 못하고
딴데로 가게 된다 할지라도,

이 다음날 누군가가 이곳에
와, 멍석을 쓰고
채소와 과일을 따먹게 될게 아닌가?

모든 사람이 다 이렇게
한다면, 어디 가나 이 지상은
과일과 곡식,
꽃밭이 만발할 것이요
모든 農場은
모든 人類의 것,
모든 천지는 모든 백성의 것
될게 아닌가.”

황사 씻는 빗속, 부여읍 동남리 시인댁 툇마루가 그립습니다.